본인은 암이라는 것도 모르며 단순히 황달인 줄만 알고 있었다. 곧 닥쳐올 죽음을 모른 채 밝은 미소를 띄우며 사람을 대하였다.
『한형, 우리 담배 한 대 핍시다』라고 제의해왔다. 그제서야 내가 하루에 한 갑 정도 피우는 골초인 걸 깨달았다.『안 돼요, 가족들이 싫어하는 일을 왜 하려고 합니까?』라고 거절을 해버렸다.
나도 입원시 사복을 뒤적거려 담배를 갑채 꺼내들어 구겨버리며『나에게 남은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데 여태껏 허송세월을 보냈지만 이제부턴 단 한 순간이라도 뜻 있고 귀하게 살리라』라며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5일 만에 곡기를 허락 받은 나에게는 쌀 한 톨이 얼마나 고맙고 귀한가를 깨달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나는 5명의 암환자와 생활을 하며 가물가물 꺼져가는 촛불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애 태우는 그들을 볼 때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가를 보았다.
몇 일 후 처가 다니는 성당에서 낯 모르는 여신도 몇 명이 찾아와 기도와 함께 성가를 불렀다. 그 병실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쾌유하라는 기도는 축문을 읽어내려가는 듯했고 성가는 장송곡을 듣는 듯한 기분으로 몹시 불안했다. 한 주일이 지나서야 혈변도 멈추고 고장이라 생각했던 체중계도 정상으로 되어갔다. 입원할 당시의 그 고통은 이미 기억 속에서 멀어지고 어떻게 하면 이 병실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였다. 2주일이 지나서야 통원 치료해야 한다는 엄중경고와 함께 담당의사의 퇴원 허락을 받았다.
병상생활을 끝내며 5명의 암환자의 부러운 환송을 받으며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왔다. 아파트 앞 마당에 덩그러니 나를 기다리던 자동차 앞에 서서 발로 타이어를 차며『그날 너를 타고 같으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어 임마』
다음날 오랫만에 직장 동료들과 무용담을 나누듯 병상생활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내가 쓰러진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었는데 그 중 많은 사람의 의견이 술 때문일 것이라는 데 대해 나는 못들은 척했지만 나 역시 부정하질 않았다. 서울이 고향인 나는 직장 따라 부산에 내려온 지도 4년. 그동안 마셔온 술이 서울에서 마신 술의 양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파악한 나는 내 의지로 이 병은 꼭 나아 보리라는 각오와 함께 병원에서 이미 끊어버린 담배와 함께 술, 커피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것들이 생각날 적마다 나이 어린 간암 환자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겐 또 다른 시련이 한 걸음 다가오는 걸 전혀 몰랐다. 퇴원한 지 열흘 정도 지났을까… 몸살 감기 같은 기분으로 퇴근해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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