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망덕이라 했던가? 어렵던 시절에 받았던 은혜를 싹 잊고 도리어 한 맺혔으니 앙갚음하겠다는 상쌍놈의 행태를 그렇게 불렀었다. 그랬었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적에는 배은망덕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가르치시던 스승들이 계셨다. 그러나 이 배반의 시대에는 아무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그 배반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즈음에 배반을 관찰하고자 한다.
은혜를 입은 시절을 회상하면 설움과 눈물과 허기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애비가 종놈이라서 자식도 종놈일 리야. 혼자된 어미가 보따리 장사로 끼니를 걱정하며 하루들을 연명했을망정 그 자식은 은인들을 만났고 성공을 위한 줄타기로 오늘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리된 줄을 숨겨두고만 싶어서 책상 위에 멋드러지게 제 명패를 새기어 놓은지라 제 과거를 아는 사람 만나기란 지겹게도 싫더라. 더구나 은인들이란 제 아픔을 가장 깊이 알게 마련이니 은인들을 앞에 두기란 더욱 싫더라. 이것이 배반자가 토로하는 배반의 시작이다. 지금은 변했다, 이거다.
그러나 천만에! 그는 변한 게 없다! 그가 예나 지금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주검이긴 마찬가지인데 변한 게 뭐란 말인가? 자기 안에서 배배 꼬여 누군가가 저를 돕는 것을 오히려 상처를 건드리는 짓으로 여기고 한을 쌓아왔으니 은인들을 기억할라 치면 제 아팠던 상처만 떠오를 뿐 받은 은혜나 고마움 따위가 기억될 리야. 예전엔 없어서 지랄했고 지금은 없어질까 봐 지랄인 것 뿐이지 뭐가 변했단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그가 행동하는 원리는 같은 두려움이며 그 짓거리가 곧 배반이다.
그러니까 배반은 사랑을 잃은 두려움이라 해야 한다. 사랑에 대하여 무지한 결과가 배반이며 그것을 물리칠 방도는 이미 배반에 있었다. 다시 배워야 한다. 두려움이란 거짓이며 사랑만이 실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가 감당해야 했던 역경들은 오히려 그렇게나 커다란 은덕을 입을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사랑을 얻는 길이며 배반을 멈추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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