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수가 구속되었다. 나는 그러한 사람이 어찌하여 대학강단에 서서 학생들과 학문을 논했는지 그것이 의심스러웠다.
며칠전 우연히 그가 쓴 글을 읽었다. 「사랑의 에세이」 라는 그 제목은「식욕형 여자와 성욕형 여자」라는 것으로 성경 구절을 도용(盜用)하여 왜곡했다는 데서 그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의 오류는 루까복음 1장 마르타와 마리아를 에피소드로 비하한데서 비롯된다. 예수 일행이 여행중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예수를 모셔들였다. 손님이 많이 와 마르타는 정신없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는데도 마리아는 예수곁에 꼭 달라붙어 앉아가지고 예수 말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 했다. 참다못한 마르타가 예수에게 부탁하여 동생을 좀 꾸짖어 달라고 했으나 예수는 엉뚱하게도 게으른 (?) 마리아 편을 들어 오히려 부지런한 언니쪽을 야단쳤다고 성경은 기록하였다고 하였다.
몇줄 안되는 그 구절을 놓고 왈가왈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묘하게 해석하고 있는 부분이 심히 유감스럽다.
그는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를 30대 초반의 젊은이와 20대 전후의 남녀 사이로 보고, 이성간의 교류관계로 보았다는 점이다. 또 마리아는 성경 말씀보다 복합적 의미로써의 사랑이 싹트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해괴망칙한 망언이 있을 수가 없고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는 마르타가 하는 세세한 일상사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고 적어 놓았으니 할말을 잊고 만다.
또 요한 복음 12장에 마리아가 향유로 예수의 발을 닦아드린 일과 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도, 죽을 때까지 계속 시중을 든것도 모두 여신자였다며 예수가 말한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나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미보다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남녀간의 사랑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교묘하게도 예수님의 사랑선포를 남녀간의 사랑으로 비하시키고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해버렸다.
성경이란 무엇인가. 하느님 아버지의 인간 창조와 구원의 역사가 계시된 책이 아닌가. 그가 인용한 두 복음
서에는 흔히 우리가 아는 세속적인 사랑은 찾을 수가 없던데 식욕형 여자니 성욕형 여자니 하면서 궤변(詭辯)을 늘어 놓고 있으니 소위 지성인을 가르키는 교수가 이러한 잡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시킬 수가 있다는 말인가.
비록 여러 사람이 던지는 돌에 내 돌 한 개가 더 추가 될지언정 그는 지탄을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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