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물건 가운데 이른바 「외제」가 몇개나 될까. 재미반 호기심 반으로 헤아리다가 깜짝 놀랐다. 10개가 넘어서면서 나는 헤아리는 것을 차라리 포기하고 말았다. 나 자신에게 놀랐고 내가 갖고 있는 물건에 새삼 놀랐기 때문이었다.
우선 카메라가 있었다. 스카프가 석장에 손가방도 5년이 넘은것을 포함, 두개나 보였다. 십년을 넘긴 것이지만 손목시계도 눈에 띄고, 입지 않는지 이미 오래된 스커트가 한 장 나왔다. 81년도엔가 영국 런던에 갔을 때 남들이 사는 바바리는 엄두도 못내면서 순전히 객기로 구입한 그 유명한 체크무늬의 스커트였다. 일본에서 할인가격으로 샀던 내 주먹만한 헤어드라이어는 아직도 유용하게 사용되는 소중한 물품이고 루르드 순례도중 비가 쏟아지자 함께 갔던 일행이 사서준 우산이 눈앞에 있었다. 그뿐인가 입술연지를 포함한 몇개의 화장품은 작년 외국에서 6개월간 생활했던 흔적으로 내 수중에 남아 있었으며 등산용 칼과 다리미, 심지어 비타민까지 나왔다. 또 있었다. 커피메이커…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이 헤아림은 참으로 비참하게 끝났다. 만일 마음먹고 내 물건을 뒤져 낸다면 아마도 나는 국산품 애용 운동가들에게 지탄받아 마땅한 사람이기 십상이었다. 외제를 특별히 선호하지도 않을뿐더러 외제상품이 국내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 대해 상당히 분격하고 있는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래서 변호사의 입장에서 보기로 했다. 우선 내가 소유한 물품들의 연도를 따져 보았다. 다리미의 경우는 15년이 훨씬 더 넘었으므로 이젠 「고물외제」에 속했다. 시계도 10년이라는 세월을 넘겼고 스카프도 모두 6년 이상이나 지나 유행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그나마 선물로 받은 것들이기도 했다.
몇년마다 한번씩 바뀌는 길이 관계로 83년도 영국산 스커트는 장농속에서 잠을 자고있는지 오래됐다는 것과 헤어드라이어의 경우 86년에 생긴 것이니 그 역시 6년이나 나와 함께 생활한 오래된 친구였다. 손가방은 또 어떤가. 손때가 꾀죄죄하게 묻고 금속부분이 색바랜지 이미 오래된, 그야말로 과거지사의 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우산도 현지의 날씨관계로 갑자기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그것을 선물한 장본인이 증언을 해줄 것이고.
이름하여 스위스 칼이라는 예칭이 붙은 등산용 칼만큼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새것 그대로라는 점은 나로서도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약효는 시효를 넘겼지만 버리기 아까워 보관하고 있는 비타민은 또 어쩌랴. 집안 친척 어른이 4년전에 선물로 사다준 커피 메이커도 외제임에 분명하나 국산품 쓰자 고 이제 와서 버릴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꼼꼼히 챙겨보니 오래된 물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나마 거절할 수 없었던 선물이 절반을 넘었다. 물론 새로 생긴 외제물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 손톱깎기 볼펜 머리핀 소형 녹음기 티셔츠 몇장과 잡동사니 몇가지 등이 지난해 구입한 이른바 외제들이었다.
변호를 하자면 할말은 부지기수다. 직업상 지난 십수년간 외국을 들락거렸던 배경을 전제한다면 나는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외제상품을 너무 조금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물 역시 남들 이상받지 못했을 뿐더러 나는 받기 거북한 선물을 받는 기쁨도 죄라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검사의 입장으로 돌아가본다. 역시 지적할 말은 많고 또 많다. 과거에 구입한 물건이라고 해서 외제가 아닌 것은 분명 아니다. 직접 구입을 했건 선물을 받았건 외제는 외제다. 선물로 받은 외제라고 해서 당당할 수도 없고 변명이 될 수도 없다. 만일 이같은 변명이 통한다면 외제상품 선호를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할 수가 없다.
외국여행시 한두점씩 구입하는 외제상품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구입상품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외제상품을 하나라도 사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문제다. 그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상품이 설자리는 결코 마련되지가 않는다.
최근 한국 평신도 사도직협의회가 펼치고 있는 「우리 상품 쓰기운동」은 참으로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제시된 운동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 경제의 현주소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운동이 가지고 있는 절박함과 시급함을 함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외국산 각종 농산물은 개방을 외치며 숨통을 죄고 있는가 하면 변두리 조그만 구멍가게에서도 외제과자, 외제 쥬스 없이 장사를 할수없다고 울상을 짓는다. 일제 된장, 단무지는 물론이고 일본에서 만든 김치까지 찾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짜 좋아하면 양잿물도 마신다더니 외제 좋아하면 일제김치까지 먹게 되는 모양이다. 아예 통채로 나라를 말아먹기로 작정한 심사가 아니고서야 이럴수는 없다.
따라서 평협의 우리상품 쓰기운동은 정신 개조운동부터 전개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신을 바꾸지 않고는 우리상품을 쓰는 일이 쉽지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대로 나가다 우리의 농촌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농촌이 문을 닫는 다는 것은 「나라의 문을 닫는다」는 말이 된다. 나라의 문을 닫으면 결론은 하나다. 모두다 쪽박차고 거리로 나앉자는 의미가 된다. 21세기 유랑민이 될 수밖에 없다.
실천운동은 실천할때만이 운동의 가치가 있다. 나라를 살리자는 일에 교회가, 신자들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평협의 우리상품 쓰기 운동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 가운데 외제상품을 찾아보라. 아마 대개는 깜짝 놀랄 것이다.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 외제상품이 삶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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