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먹이는 사람의 서투른 솜씨와 환자의 먹으려는 의지가 없어 그 약은 모두 흘러내렸습니다. 나는 뛰어나가 남은 약을 받아 다시 숟가락에 보드랍게 개어서 어린 자식들 약을 먹이던 대로 그의 입에 넣고 비스듬이 숟가락을 들고 있었더니 약이 넘어 갔습니다.
얼굴에 약간 핏기가 도는듯 느껴졌으나 곧 다시 푸르게 돌아갔습니다. 얼굴에 흘러내려 보기 흉한 약물을 손수건으로 말끔히 닦아주며 가족 없는 산중에서 외롭게 숨져가는 그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가족들이 뛰어와 울부짖었습니다.
이십세 전후의 예쁜 딸이『병원에 가게 우리 아빠 좀 들어주세요』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너무도 냉담한 그들의 태도에 분노를 느낀 나는『젊은이들 무엇하고 있소. 어서 나와 이 사람을 들고 내려갑시다』라고 말을 했더니 네명의 젊은이가 나와 그를 들고 산비탈을 내려와 지나가는 삼륜차에 실었습니다. 이튿날 산에 가니 그 사람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웬일인지 그 여인들은 내가 가면 쉬쉬하면서 하던 얘기를 멈추고 어쩐지 나를 꺼려하는 눈치였습니다. 하는수 없이 나는 혼자서 어둠을 밝히며 언덕에 앉아 묵상기도를 하며 지냈습니다.
생명력이 넘쳐 흐르는 자연의 풍속에서 예수님의 말씀들이 속삭여 오고 있었습니다. 찬바람에 잎이 떨어져 나목이 되었다가 봄에 다시 싹이 돋으며 거듭나는 나무들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의 뜻을 깨우쳤습니다. 산골짝에 방울방울 솟아나 흐르는 물길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의 뜻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금속성 차바퀴 소리를 밀려오는 파도소리로 들으며 나는 벅찬 감동속에서 어느덧 펜을
들고 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글은 서툴고 작으나마 주님을 찬미하는 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고 신기한 것은 수십년의 공백을 넘어 나이 육십에 시작한 글이라 서툴고 어려우나 글을 쓰고 있으면『나는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며 보람과 의욕이 용솟음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그만둘까 생각하면 그 누군가가 등을 두드리며『써라 써라』속삭여 왔습니다. 요한 묵시록에 보면 하느님의 자식이 탄생하면 사탄이 그를 삼키려고 대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사탄의 먹이가 되지 않게 독수리의 날개에 심어 광야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춤도 추고 얘기꽃을 피우는 여인들 틈에서 나를 빼내시어 산비탈에 홀로 앉아 당신을 증거하고 찬미하는 글을 쓰게 해주셨습니다.
용서와 사랑과 은총의 하느님 감사합니다. 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당신의 오묘한 손길로 인도해 주신 크신 은총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지척에 있었습니다. 내 마음 너무도 굳어져 돌고 돌아 당도하느라 이렇게 어려웠습니다.
지금까지 「믿음의 동기」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 부터는 대구 효목본당 이병곤씨의 신앙수기 「주께 찬미 감사를」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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