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수속을 하느라 황급히 입원실 문을 빠져나가는 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괴었다.『나이 서른아홉에 이게 뭐람. 세은아, 정은아, 혜은아, 아빠없는 너희는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체력과 건강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내가 사형집행을 앞둔 사형수가 돼버리다니…』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혈압, 체온, 체중 등을 측정하였다. 체중계에 올라선 나는『이거 고장난 저울 아니에요? 평상시보다 10㎏ 이상이나 적게 나가는데요. 제가 무슨 병이죠』 몇 마디 물음에도 대답 대신 미소를 띄우며 금식 팻말과 차가운 링겔 바늘을 팔에 꽂고는 나가버린다. 한 가지 알아낸 것은 어제 오늘 대변을 본 게 아니라 피를 쏟아낸 것이었다.
저녁 때가 됐을 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직장동료가 다녀간 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녁에 갑자기 팔뚝이 뜨끔거려 깨보니 간호사가 검사에 필요하다며 피를 뽑고 있었다. 상당량의 피를 뽑고 나선『아침에 위 내시경 검사하셔야 해요』라는 소리에 그제서야 나는 위장이 안 좋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병실을 비추자 5명의 환자는 꿈틀거리며 무엇인가 하였다. 나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겁 먹은 소처럼 잔뜩 긴장을 하고 위 내시경 침대에 누웠다. 드디어 이물질이 입을 통해 들어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고통을 당해보았다. 3∼4분이 3∼4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일어나세요』라는 소리와 함께 심각한 얼굴을 하며 의사는 책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 내 위를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벽의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니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된 눈과 반쪽이 된 얼굴이 비춰졌다. 의사 책상을 지나면서 힐끗 그림을 쳐다보니 화산의 분화구를 그린 것 같았다.
파김치가 된 내 육신을 이끌고 입원실 좁은 방 안으로 옮겼다. 병실의 선배(?)들은 익숙한 아침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있으려니까 담당 의사가 내 머리맡에 있었다.
『십이지장궤양입니다. 3개월간 집중 치료해야 하며 한 3년간 통원치료를 해야 합니다』하며 병실 문을 나섰다. 죽을 병은 아닌가 보다 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과 함께 비로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나와 같은 5인의 환자들은 한결같이 고통스러운 몸짓이나 허공 속의 흐트러진 눈빛을 볼 수 있었다. 나보다 주위를 일찍 익힌 어머니께 물었다.
『저자들은 무슨 병이래요?』어머니는 나즈막한 목소리로『여기는 전부 암 환자래』라는 소리와 함께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특히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환자가 간암이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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