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겸손하시어 그렇게도 듣기 싫어하시던 회장님이란 칭호 대신에 오늘에야 기꺼이 형이라고 불러드리려 합니다.
사랑하올 레오 형.
그저께 형의 비보를 듣고 저는 엇갈리는 두 가지 감회에 젖어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우선 그 하나는 너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여윈 로사 자매님과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다두와 시몬 형제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뿐만 아니라 늘 우리 곁에서 당신 체구 만큼이나 묵직히 자리하여 그 몫을 다하시던 형을 이젠 이 세상에서 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한편 신앙적 관점에서 형의 죽음을 바라볼 때 더없이 고귀한 마침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기려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질고 모진 사람의 목숨이 그리 선하게 마침하기가 쉽지 않을진대 형의 죽음은 형의 이름 만큼이나 선한 끝맺음이었습니다. 우리 신앙 최고의 지고지순한 몸짓인 미사에 참례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용감히 전하다가 제대에서 쓰러져 고귀한 최후를 맞이하심은 감히 순교에 가까운 행복한 죽음이었다고 표현한들 그리 큰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일찍이 내외분을 포함한 가족 모두가 우리의 가톨릭 진리에 입교하시어 일상의 삶에서나 교회 안에서의 삶에서 매 순간마다 참으로 모범적인 표양을 보여주셨으며 특히 로사 자매님과의 두터운 금실과 성가정을 이루시려는 형의 태도는 우리 본당 공동체 모든 이들의 귀감일뿐 아니라 시새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고 회고됩니다.
많은 일들을 하시면서도 조금도 교만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겸손하시어 많은 이들의 칭송을 자자히 받으시던 형은 많은 분들의 천거로 이른바 교회 내 큰 머슴의 자리인 청소년분과 담당 사목위원으로 임명되시어 선종하기까지 그 힘겨운 책무를 다하셨습니다. 주일학교 교리교사의 든든한 후원자이셨고 그 많던 행사에서는 참으로 낮은 자세로 막일꾼을 자처하시어 텐트 말뚝을 손수 박아주시던 믿음직한 그 모습을 이제 이 땅 어디에서 뵐 수 있을런지요.
그러게요. 그렇게 이 짐 저 짐 지시고 살아오시기가 힘드셨나요? 예, 틀림없이 힘에 겨우셨던 게지요. 그럼 좀 쉬시지 그러셨어요. 성질이라도 한 번 부리시고 소리라도 한 번 지르시지 그러셨어요? 형이 지신 십자가도 기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몫인데 예수님 흉내 내시느라 형이 모두 지고 가신 게지요. 그래서 형은 작은 예수가 되신 게지요.
형의 발 닿은 모든 곳에 흩뿌려진 고귀한 복음의 씨앗들은 다시 싹 틔워 꽃 피울 몫은 우리에게 넘겨주십시오. 형의 뜻이 꽃 피는 그날, 그날이 곧 형의 부활날이실 테지요. 그 때 만납시다. 이건 진리 안에서 형을 보내며 할 수 있는 가장 진솔한 우리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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