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기다리며 산다.
대림절 끝에 예수님께서 내 속에 오시도록 기다린다. 입학시험 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린다. 자녀 결혼후에는 손자 기다리고, 일가 이룬 자녀가 출세하기를 기다린다. 손자 손녀들이 번창하고 건강하며 잘 자라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기다림들 다음에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면, 그것은 행복인데,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그것이 불행이 된다.
때로는 공포의 기다림도 있다. 어음이나 수표를 급한 대로 마구 발행한 후의 기다림(?), 암수술 후의 기다림, 사형선고를 받은 후의 기다림.
어린 시절에, 빨리 어른이 되기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신비로우며 캄캄한 성(섹스)의 비밀을 알고 싶은 기다림 때문이었다. 불행하게도 어른이 된 후 공포의 기다림만 더 많아졌고, 성의 베일은 끝없는 비밀 저편에 더욱 깊이 감추어진 것 같다. 그 기다림은 잘못이어서 나이 들어 고생만 하고 있나 보다. 그러나, 기다리거나 말거나 와 주는 시간은 어릴 때 모르던 수많은 공포를 내장해 놓았다가 적절한 때(?)에 적당한 순서를 밟아 베풀어 주고 있으니, 성장과정이란 혹시 공포 기다림 훈련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기다림일까?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기다림은 대개 비극이 되지만, 그것이 비극이 안 될수도 있음을 최근에 아내의 얼굴에서 발견했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아내의 얼굴 주름살을 볼 수 없었는데 돋보기로 보니, 그것은 「할마시」였다. 그러나, 원시의 노안으로만 보면 아내는 아직도 처녀 같은 팽팽함이 그대로이기에 나는 죽을 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만년 청춘-요즈음 아내는 소녀처럼 샐죽해지기도 하고, 나는 소년처럼 철없이 약 올리기도 하며 소꿉놀이로 매일을 살고있다.
그렇다. 기대할 만한것은 의도적·의식적으로던 기다려 보지만, 별볼일 없는 것은 아예 기다리지 말자. 미리 겁먹고, 공포에 질려 답답해 하다가 암 걸릴라. 적극적으로 멋지고 신나는 일만 기다리자. 생기 넘치고 활력 치솟는 나를 이웃이 기다리게 하는 것도 보람이라.
우리는 수학여행 손꼽아 기다리듯 봄을 기다린다. 부활의 몸을 기다린다. 물론 네번째 대립초가 밝혀지고 예수님 기다려 만난 다음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