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안녕하십니까?
푸릇푸릇 풀잎사귀와 나뭇잎들이 연초록 옷을 갈아입고 생명의 숨소리를 터뜨리는 새봄입니다.
맑은 봄하늘을 바라보며 문득문득 신부님이 그리워 이 글을 쓴답니다.
신부님, 제 생각나세요? 장난감 자동차만 보면 온 정신을 다 빼앗겨 어쩔 줄 모르고 좋아서 가지고 놀던 제가 벌써 마흔에서 한 살이 모자란 서른아홉 살이 되었어요. 신부님께서 옛날에 여행을 가셨을 때 저에게 보내주신 편지를 전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6학년 때 우리 담임선생님께서는 전화, 팩스 같이 간편한 것보다 글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편지를 좋아하셨지요. 그래서 선생님 댁에는 주고받은 편지가 차곡차곡 모아져서 창고처럼 수북히 쌓여져 있었지요.
왜냐하면 우리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운 글을 쓰시던 시인이셨답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편지를 귀찮게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학이 발달하면서 모든 것이 편리해지는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화시키는 것 같아 슬퍼져요.
신부님, 저는 어느날 신부님께서 다 떨어진 헌 양말을 신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신부님의 모습을 저는 잊을 수가 없었어요. 또한 헌 달력이나, 광고 용지를 버리시지 않고 모아서 저에게 주시며 그림 그리라고 하시던 말씀에 작은 것부터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때 전 생각했어요.
비록 옷차림과 행동은 소박하셨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열심히 생활하시고, 근검절약을 실천하시던 신부님의 모습과 제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여러 가지 느낀 점이 많았었지요.
문명의 발달로 잃어버리기 쉬운 따뜻한 마음씨와 절약정신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주고, 희망을 전해주는 훌륭한 사제가 되기로 그때 결심한 거예요.
신부님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저를 위해서도 기도 많이 해주세요. 어린 시절의 멋진 장난감 자동차에 정신을 쏟지 않고, 고물차를 타고 시골길을 다니는 시골 신부가 되었답니다.
지금 제가 사제로 있는 시골의 아담한 성당 앞 화단에도 예쁜 꽃들이 올망졸망 피어났어요. 고운 꽃 향기를 신부님께 전해드리고 싶어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