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기술은 문화의 기저부터 변모시킨다는 의미에서 강력한「사회적」기술의 성격을 띤 지 오래다. 60년대에는 정보기술의 심상치 않은 흐름을 감지하여 곧 새로운 문명형태로 넘어가리라 예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회학자 다니엘 벨이「정보사회」를 산업 후 사회라 내다보고, 경제학자 마흐럽이 미국의 GNP에서 지식산업(정보의 생산과 유통)의 성장율이 GNP의 그것을 상회했음을 지적한 것은 대표적인 예였다.
이제 정보는 문명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국가의 흥망성쇄가 거기에 걸리는 듯한 양상을 빚고 있다. 정보기술의 뿌리를 거슬러오르면, 사람들의 기억술과 만나게 된다. 중세 종이의 보급과 인쇄 관련 기술의 발달은 전 지구 덩어리를 한데 얽는 지식 공동체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들 발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데, 20세기에 이르러는 컴퓨터라는 지능을 갖춘 기계와 전기통신 기술의 결합으로 정보통신 기술로 돌연변이적 진화를 일으킴으로써 사회를 온통 뒤바꾸게 된 것이다.
문명의 전개에서 기록의 보존과 전달이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했는가는 새삼 얘기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톨릭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쇄술이 널리 퍼지기 이전까지는 학문과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던 정보기술은 사람의 머리와 입에 의존하는 기억술이었다. 유럽 최초의 서사시인「일리어드」와「오딧세이」도 구전으로 전승됐으나,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한 기억술의 연구가 활발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세까지의 책 만들기는 주로 수도원에서 수사들의 눈과 손을 도구로 한 필사본 제작이었다. 컴컴한 조명에서 추위 더위와 싸우며 필사본의 제작에 열중하던 수사들 가운데서는 실명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구텐베르크의 현대식 인쇄법(1436∼1450)의 출현 또한 가톨릭과 깊게 관련된다. 독일의 마인츠에서 태어난 구텐베르크는 대주교의 조폐국에서 일하던 아버지 덕분에 금속 세공 기술을 익힌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인쇄술 개발은 결국 그를 빚더미에 앉게 한다. 1448년에는 다시 요한 푸스트의 지원을 얻어 활자 제작을 이어가나, 결국 그의 제소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성서의 인쇄본과 활자 등 모든 기물을 넘겨주게 된다. 그의 채권자들은 첫 작품으로 성서를 찍어낸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짜리 성서에는 무거운 고딕체 활자가 사용됐고, 그 밖에 다른 책의 인쇄에는 별도의 활자들이 사용됐다. 마인츠의 대주교 나사우의 아돌프 백작은 헐벗고 굶주리고 거의 실명상태인 구텐베르크에게 해마다 옥수수와 포도와 신사복, 그리고 연금을 하사하여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중세로부터 가장 많은 인쇄의 수요처는 수도원이었으므로 인쇄술의 발달로 가장 혜택을 받게 된 곳도 수도원이었다. 한편, 종교개혁은 성서가 대량 인쇄되어 널리 보급됨으로써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이라 해석되어, 현대식 인쇄법의 개발은 기술 혁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꼽힌다.
이건 중세의 얘기이고, 오늘날의 정보사회는 예컨대 컴퓨터의 후배가 선배가 되는 식으로 놀라운 발전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에 따라 사회 변화의 폭과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당장 우리의 가정생활을 파고들 자동화 변화도 가시화되어, 환상의 미래를 약속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정보사회의 전개는 긍정적 측면의 뒤안에서 새로운 문제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다.
첫째 정보기술의 발전은 과거의 지식 저장 수단에 비해 에너지 사용도 적고, 속도가 빠르고, 가격도 싸다. 이것은 매우 바람직해 보이지만, 컴퓨터의 엄청난 보급은 따지고 보면 결국 세계 차원의 소비를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둘째 컴퓨터는 사실들을 수집하고, 저장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므로, 정보화 사회가 정보를 더 빨리 많이 만들어낼수록 경제 정치 등등의 기관의 집중화, 비대화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물질적 쓰레기가 사람들을 병들게 하듯이 정보 과잉의 상태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의 신경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잡음으로 인해 인간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정보의 과잉이 사회적으로 야기하는 사회 오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정보사회의 이들 부정적인 측면을 살피고, 그것을 최소화하는 일에도 지혜는 모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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