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시지요? 더위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더위에 건강 조심하십시오. 요즘 인사가 더위요 대화 내용의 대부분이 더위, 가뭄에 대한 이야기가 돼버렸습니다.
연일 갱신되다시피 한 몇십 년 만의 가뭄, 밤과 낮이 별 구분없는 열대야현상, 눈만 뜨면 의례 40℃ 가까이 올라가는 무심한 수은주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벌써부터 흉년을 걱정하는 이야기 가운데서도『설마 하느님께서 이대로 내버려두시겠는가?…』하는 스스로 위안 삼는 이야기가 더욱 고맙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생활 습성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는 사람들의 말 속에서 근 한 달 정도의 더위가 많은 것을 깨우쳐주었다는 고마움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창문을 꼭꼭 닫고 있는 집이 부러울 정도로 오늘의 더위와 가뭄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 듯 싶습니다. 입맛이 없어 모처럼 만에 냉수에 밥 말아 먹고, 아침이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부시시한 눈빛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심지어는 에어콘 있는 형님네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올까? 하다가도 나만 더운가? 참지….
건축 현장에서 땀 흘리며 온 종일 일하는 사람들, 물 한 바가지라도 더 퍼올리려는 농부들의 모습, 게슴치레 눈을 감아가고 있는 가축에게 물을 끼얹는 안타까운 모습,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뒤치닥거리며 잠 못이루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원고지에 땀 자국이 묻어나는 이 밤도 앞으로 길어야 한 달이면 되겠지… 길게 잡아 봅니다.
그래도 아직은 수돗물이 끊기지 않아 샤워는 종종 할 수 있고, 미지근한 바람이지만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선풍기 한 대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밤입니다.
누구는 비싼 돈 내가면서 억지로 땀을 뺀다고 하고, 누구는 없는 시간 쪼개어 살 빼러 다닌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어도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고, 끈적끈적할 정도로 땀이 흐르니 다른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무더위가 지나면 적어도 몇 킬로그램이 줄 텐데….
오늘 낮에 이사간 교우의 집 축복예식(축성)을 하였습니다. 방 다섯 개와 화장실 두 곳,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잘 정돈된 방들, 넓직한 베란다에는 창 밖이 잘 안 보일 만큼 큰 나무 화분들이 시원스럽게 가득 차 있었고, 언제 땀으로 속옷을 적셨느냐? 반문이라도 하는 듯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사막의 오아시스를 연상케 해주고 있었습니다.
땀을 식히고 시작된 가정축복예식은 성가 두 곡을 다 부른 뒤에야 끝날 정도로 집도 크고 시원하기도 하고 이사온 교우의 얼굴은 그야말로 싱글벙글이었습니다.
자매님! 집도 크고 시원하니까 좋으시지요?…. 행복하시지요?…. 더 바랄 것이 없으시지요? 하니까『신부님! 천당은 더 좋을 테지요?…』하면서 이제는 더 바랄 것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이 집에 오기까지의 연옥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저의 집 양반이 칠남매의 맏이랍니다.
이 집이 꼭 열 여섯 번째의 집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동생 여섯을 하숙을 치듯 공부시켜 살림을 내보내는 동안 눈물도 많았습니다.
월세로 단칸방에서 새 살림(신혼생활)을 시작한 후 열다섯 번 이사를 다니는 동안 뭐 하나 남아나는 것이 없고, 변변한 것 사 보지를 못했습니다. 달동네 판잣집에서 첫 살림을 시작한 이후 근 30년 동안 맞벌이를 하면서 누가 내 아이고, 누가 삼촌이고 시누이인지 열 명을 공부시키는 동안 안 해본 일이 없고, 못해본 일이 없습니다.
바깥양반은 늘 밤 12시가 다 돼서야 퇴근하고, 30년 동안 피서 한 번 가보지 못하는 그야말로 일벌레였습니다. 심지어는 어머님 탈상 때에도 산소를 가지 못하고 회사에 출근했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왔겠습니까? 물론 그렇게까지 회사의 맡은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까 회사에서 이 집을 퇴직을 앞두고 보너스로 주었겠지요…
신부님! 오늘에서야 말입니다만 이 아파트 건축 시작할 때부터 입주할 때까지 2년 반 동안 바깥양반 몰래 40번은 왔다 갔을 겁니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집에 가면 잠이 잘 오지를 않았었습니다. 안 먹어도 배 고프지 않고, 잠을 못자도 그렇게 피곤한 줄 모르고 들뜬 기분으로 2년 반을 살았습니다.
신부님! 이제 자랑 좀 할까요? 시동생 시누이 여섯 명이 칠 남매 중에 제일 늦게 집 장만을 한다고 방 하나씩을 맡아 채워주어서 이 정도 된 것이랍니다.
신부님도 좋으시지요?… 천당 가려면 30년 고생한 것보다 더 고생하고 또 신앙적으로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지요?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고린 전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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