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인이 운전하던 자동차 뒷좌석에서 차장 넘어로 내게 장난을 걸어왔던 귀여운 꼬마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마도 그 부인은 아이 엄마였을 것이고 그 꼬마는 천진난만하게도 뒤따라가고 있던 내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숨었다가는 빼곰히 내다보기도 하면서 해맑은 웃음을 짓곤 하였다. 나는 이미 행복한 그 아이에게 손짓으로 대꾸해주며 빙그레 웃어주었다.
이때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가지 질문이 있었다. 만일 저 꼬마가 차에서가 아니라 걸어서 가던 길에서 나를 만났더라도 저렇게 행동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저 꼬마의 행복감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서슴없이 장난을 걸어도 좋다고 느낄 만큼 개방된 그 여유 있는 태도가 흘러나오는 샘은 무엇일까.
곰곰히 따져가는 사이에 꼬마가 나를 깨우쳐 주었다 싶은 것은「현실을 깨닫는 지혜」였다. 꼬마가 알고 있었던 것은「엄마와 같이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엄마와 함께 있다는 현실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것은 엄마와 같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으로써 얻은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엄마를 잊고 자기 놀이를 하기에 충분할 만큼 이미「엄마와 하나를 느낌」으로써 보이는 것들에 충분히 열려져 있었다.
그 꼬마가 예수님을 닮았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아신다고 하실 때 아버지와 이미 하나이신 분이 말씀하신 것이었고 세리나 창녀를 만나셨을 때와 더구나 유다스와 빌라도와 헤로데에게조차도 열려 계셨던 원리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처형했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을「저기 계신 분」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들과 분리되어 계실 수밖에 없는 하느님을 말했고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폐쇄적이고 방어적이었다. 그들은 늘 불안했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고 두려워했었다.
되돌리고자 한다. 잡다한 타산에 의한 관계를 청산하기를 원하여 내가 이미 거룩한 성삼위의 현존 안에 놓여져 있다는「현실」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나를 진리와 사랑편에 놓이게 할 것이며 완덕에 나아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