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일이다. 한 학생이 시위 주동으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이때는 학부모와 학교 측에서 각서를 써야만 했다. 학교 측은 대체로 학생처장이 하기로 되어 있으나 학과의 교수를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일요일로 기억된다. 마침 학교에 나와 있었는데 경찰서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가보았더니 학생처장이 있었으나 각서를 쓰지 않겠다고 하여 학과 교수를 부르게 되었는데 담당자의 설명이다. 이미 여러 차례 각서를 써본 나로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았거니와 이를 거절해야 할 구실을 찾으려하지도 않았다. 경찰서의 간부를 만나 학생을 돌봐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경찰 간부는『학생들에 대한 책임은 교수가 50%, 부모가 30%, 사회가 20%』라는 책임 분담론이었다. 이에 그렇지 않다는 반론으로 이야기는 좀 길어져 인사의 자리가 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지금 그 학생은 그래도 잘 알려진 회사의 중간 간부가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다.
85년 여름방학에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다. 부산 장흥 군산 인천 서울 등 5명의 학생과 학부형을 만나는 일이었다. 소위 문제학생이었다. 이들의 가정에서 교수의 방문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꼭 만나야 됩니까』라는 반문에는 당혹스러웠다. 나름대로 작정한 생각으로 만났을 때는 서로가 신뢰의 벽돌을 하나 더 쌓는 뿌듯함이 있었다. 학부형뿐만 아니라 그 학생들도 서로 기억하는 상대가 되는 계기가 된 적이 있었다. 이들과의 대화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얘기보다는 전공과 관련된 학생으로서의 자세를 강조해왔다. 이후에 이들은 대학원을 진학한 학생도 있고 전공 분야에 진출하여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학생과 교수의 관계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인간적으로 명쾌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못된 자식이라도「호적에서 빼버릴 수 없듯이」이들을 끌어안으려는 대학과 정부에서도 그동안 제적과 재입학의 기회를 번갈아 제공해왔었다. 몇 년 전부터 대학은 학칙에「학사 경고제」를 정하여 경고와 제적을 시키기도 한다. 교육의 장에서 교육에 불성실한 학생을 옹호하려는 대학이 얼마나 될까. 대학에서 이들을 비호하고 묵인하였다면 누구를 지칭하는가. 만약에 교수의 학사 관리에 의혹을 제기한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끌어들이는 일이다.
20개 대학의 총장은 좌경 폭력운동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그 후속 조치를 언론에 보도하고 있다. 후속조치의 내용은 주로 학사 관리의 문제로 귀착된다. 학사 관리의 대상은 교수의 몫으로 되어 있다. 더욱이 학생 지도의 역할을 부가하여 그야말로 교수의 책임이 50% 이상으로 상회하는 셈이다. 대학의 법(?)은 학칙뿐이다. 학칙에서 다루는 폭력은 지금 문제가 되는 폭력과는 다르다.
대학에서는 학업에 대한 지도를 우선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책임 분담론에 따르면 대학과 다른 책임을 사회가 감당해야 된다. 물론 가정에서도 분담해야 하지만 한계에 대한 이해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폭력의 정당성을 인정하려는 사회는 용인될 수 없다.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한 비난의 폭은 성숙한 의견으로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학에서도 불신의 관계로 아픔을 겪어왔다. 불신의 장애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찾아지겠지만 그 중 커다란 장애는「영합」과「아부」라는 혼탁한 이유이다. 과거의 정권에서 악용한 교수의 역할이「교수자」가 아니라「밀고자」또는「방어벽」의 몫으로 활용되어야 했지만 그 역할에 소극적이자, 학생과 영합하는 교수로 낙인되었다. 학생은 교수와의 대화를 막기 위해서 아부라는 낙인으로 교수와 학생 사이를 이간시켜왔다. 이 두 개의 허상이 몰고온 파장은 멀고 깊다. 교수들은 영합과 아부를 약화시키는 일에 노력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제는 학생들이 전공과 사회 진출에 관한 내용을 제법 의논하려고 한다. 믿음이 회생하고 있다. 신뢰가 복구되어가고 있다.
이제 또다시 대학의 문제로 확산될 좌경폭력 학생의 색출과 처벌의 문제가 대학의 분위기를 갈라 놓는다면 대학 사회의 소용돌이에 피해를 줄여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이 중차대한 것은 발전적인 측면에서 기여도가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토대로서 성숙사회를 지향하는 파수꾼으로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공동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책임의 분담론은 그 양을 따지기보다 우리 사회의 분야별 자각과 실천의 의지를 확고히 다짐으로써 성숙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하는 역군으로 양성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대학과 사회 그리고 가정이 다 함께 정성 들여 가꾸어야 할 존재들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