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의 불볕 더위와 강렬한 스포트라이트와 빨간색 카페트로 단을 꾸민 제단과 그 위에 물결치듯 펼쳐놓은 하얀 포, 그리고 거기 모여온 군중의 숨죽인 부채질은 차라리 원망스런 몸짓이라고 해야 하겠다. 서로 상반된 두 세계가 충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야 산다는 진리의 세계와 호사스럽게 치장한 만큼이나 몰골이 흉한 죽음의 세계와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 서품된 젊은이들은 나의 후배들이다. 저 젊은이들은 서품 예절이 드러내고 있듯이 자기를 죽이는 죽음을 결행하고 있었다. 저들이 차려입는 하얀색의 부활이라는 소망을 얻기 위하여 저들은 자신들의 발치에 펼쳐진 하얀 강물에 과감히 뛰어들었고 체읍하며 엎드려 천주의 자비를 구했다.「무릎을 꿇읍시다」할 때 얼굴을 바닥에 대고.
후배가 좋은 것이 선배가 잘못하며 힘겹게 배운 것을 다시 잘못하지 않고도 거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면 나는 이 말을 해야 하겠다.
「나의 사랑하는 후배들아, 너희들이 결행한 그 죽음은 너희들을 숙였던 과거에 대하여 죽는 죽음이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기대되는 일체의 타산에 대한 죽음이었으며, 진리에 눈 뜨기 위해 죽는 죽음이었다는 뜻을 새기어 두거라. 그래야 너희들이 차려입은 흰 옷이 어울릴 예수님의 부활을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박수를 칠 때 속아 넘어가지 말아라. 사실을 말하자면 저들은 제 멋에 겨워 박수라는 것을 쳤던 것 뿐이다. 너희들은 다만 너희들이 결행한 하얀 부활의 강물에 뛰어든 죽음이란 실재를 관찰하거라. 그렇게 하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너희들이 저들의 박수갈채에 맛 들이기 시작한다면 언젠가 저들이 너희들을 손가락질 할 때 너희들은 기가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너희들은 항상 그리스도 때문에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품식이 끝나고 돌아선 사람들은 자기들이 머물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화려한 분칠에 요사스러운 향내를 풍기는 저 죽음이라는 놈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고단한 하루를 쉬고자 했다. 하얀 강물에 뛰어든 바보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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