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작은 돈인데 보내도 될까요』『오늘 50만원짜리 적금을 탓는데 적지만 온라인으로 우송합니다』『같은 여자로서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어 보잘것 없는 정성이지만 보냅니다』『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보탬이 된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최근 본지에 보도된 호소기사에 대한 사랑의 응답자들은 참으로 겸손했다.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한 그들의 아름다움은 그들의 겸손함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것 같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의 호소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이들의 자게도 놀랍지만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태도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 해주고 있다.
전화나 편지를 통해 성금과 함께 실려오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접할 수 있는 현실은 어쩌면 상당한 행운일지도 모른다. 각박하고 짜증스러움이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이들이 보내오는 메시지는 한줄기 시원한 샘물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백혈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한 주부환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본지에 소개된 후 쏟아진 사랑의 손길은 무려 2백 50여명, 약 보름여만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가 2백명을 넘어섰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록경신은 이루어진 셈이다. 모아진 성금의 액수보다도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사실 역시 반가운 현상이 아닐수 없다.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된다』는 단순한 진리는 사랑의 나눔이라는 행위를 통해 언제나 입증이 된다. 몇천원에서부터 몇백만원대까지를 오르내리는 이들의 사랑 나누기는 액수의 다양함만큼이나 다양한 참여자를 자랑한다. 바로 이 다양함이 매스미디어를 통한 사랑 나누기의 장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작은 사연을 함께 보내오는 경우도 있지만 말없이 성금만 전달되는 경우가 대부분인것도 본지를 통한 성금의 특징일 것이다. 전국에서 아니 해외 신자들까지 합세한 성금내역에는 짤막하게 이름만 기록되어 있어 사연을 알 수 없지만 가득하게 담긴 사랑의 훈기만은 분명하게 전달이 되고있다.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신문이나 라디오 텔리비전 등 보도매체의 기능 가운데 사랑의 연결고리는 아마도 가장 값지고 보람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정보화 사회에서 일약 총아로 군림하고 있는 매스미디어이지만 그 자체가 갖고있는 수많은 역기능 때문에 어쩔수 없이 부정적 이미지를 함께 갖고있다. 그 부정적 이미지를 어느정도나마 씻어주는 기능이 바로 사랑의 메신저, 사랑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역할일 것이다.
이웃의 따뜻한 사랑을 모아 그 사랑이 필요한 이에게 전해주는 역할이야말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선사해준다.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사랑의 실천자들을 통해 우리는 작은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위대한지를 배우고 있다.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 교육이기도하다.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전달된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비극적 상황도 우리 신자들의 사랑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것 같다. 자발적으로 시작된 소말리아 돕기 성금 역시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라는 공식 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모금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지에도 심심치 않게 그 사랑이 전달되고 있다. 물론 아직 충분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현재 인간 사회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가「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현상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해도 이 불평등하기 짝이없는 현상은 계속 심화만 되고있다.
4백 50만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가는 소말리아 사태는 어쩌면 불평등한 나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쪽에선 과다영향섭취로 건강을 해치고, 바로 지구의 양면성이다.
먹거리의 공유, 나눔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이성과 양심, 생각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이 살고있는 지구내의 먹거리는 공유되어야 마땅하다. 모든 생명에게 고루 분배된 먹거리를 공의롭게 나누지 못한다면 우리 인간은 더이상 지구의 주인이 될 수가 없다. 나눔의 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때 지구는 그 생명력을 상실하고 만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따라서 본지의 작은 사랑의 나눔들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보잘것 없다고 겸손해 하는 그들의 작은 사랑으로 인해 귀한 생명을 살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좌절할 수 밖에 없었던 소녀가장이 다시 일어설수 있었기 때문이다. 쪼개질 수 밖에 없었던 가정이 다시 하나가 될수 있었기 때문이다.
12월 13일 대림 제3주일은 한국 교회가 정한「자선주일」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자선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특별히 권유하는 주일이다. 신자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덕목이 자선이지만 특별히 주일을 설정한 것은 그만큼 자선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자선주일은 나눔의 신비가 우리사회 전체에 구현이 될 수 있도록 교회와 신자들이 그 자신 전적으로 투신하는 계기로 살아야 마땅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대로 우리의 사랑을 그 사랑이 필요한 이웃과 나누는 일이다. 제대로, 적극적으로 나누는 일이다.
제9회 자선주일은 『작은 사랑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보다 많은 이들이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어도 좋다. 결코 많은 시간이 아이어도 좋다. 내 곁에, 내 사랑을 갈망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에게 내 사랑을 나누어 주자. 아마도 여러분은「아주 작은 사랑이 발휘하는 위대한 힘」을 마음껏 맛 볼 수가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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