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大邱)와 음성(陰城)에서 날아든 「하찮은 소식」이 모진 세파를 인도하는 등불 구실을 하고 있다. 사연인즉 이렇다.
소외받은 불우노인과 장애인의 끼니를 보살펴주고 있는 「요셉의 집」은 그간 네명 수녀의 가냘픈 손만으로는 힘에 겨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침마다 이곳에 누가 갖다 놓는지 모르는 쌀·배추·생선 등 양식거리와 그밖의 생필품이 쌓이는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와 비슷한 숨은 덕행이「꽃통네」에서 전해와 각박한 시국에 훈훈한 기운을 던져주고 있다.「꽃동네」가족들은 사순절 금식을 통해 어렵사리 모은 7백 50만원을 깨끗이 한 선거자금에 보태라고 대통령후보 앞으로 송금한바 있다. 개개인의 이름이 누구라고 밝혀지기를 원치않는 빈자의 일등(一燈)바로 그것이다.
이 두 사연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하며 그럼으로써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한 산 보기라 하겠다. 옳은 일을 실천에 옮길때 형언할수 없는 행복감을 맛볼수 있을 것이라는 바로 그점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이를 부연하기를 에머슨은 「덕 (德) 의 유일한 보수는 덕」이라고 했거니와 덕은 그 자체가 누리는 보수이다.
다만 「꽃동네성금」에는 여담이 따른다. 중앙선관위는 성금 전달의 참뜻은 충분히 이해하고 남으나 관련법에 저촉된다고 통보해 왔다. 「정치자금을 기부하고자 하는 자는 기명(記名)으로 선관위에 기탁해야 한다」 는 대목 때문이다. 성경은 은밀을 미덕으로 삼는데 반해 실정법은 밝히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모처럼의 선의조차 사안에 따라서는 법의 잣대로 가늠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 안고있는 이율배반이다.
각설하고, 1992년은 캘린더 한장에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려 있다. 그렇지않아도 다사다난한 12월 한복판에 14대 대통령선거까지 겹쳐 더욱 어수선한 작금이다. 한해의 시발을 다짐하던 것이 어제 같던데 세월은 이렇듯 잰걸음쳐 오고 간다. 애초 일년지계가 원단(元旦)에 있음을 다짐했던 당시로 미루어 마땅히 마감에 즘한 결산을 챙겨야할 계제인데도 나라와 백성 모두가 과열된 대선분위기에 말려 제정신이 아니다.
하기야 이나라 민주번영을 염원하는 국민된 도리로서 영도자가 될 일꾼을 가려뽑는 선거만큼이나 중차대한 일이 달리 있겠는가 싶다. 더욱이 이번 총선은 현안의 문민(文民) 정치를 창출할 여건이 그 어느때보다 충족된데다 비록 외형으로나마 관권이 중립을 표방하고 나서 이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다.
때문에 12·18대통령선거야말로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느냐 못하느냐의 시금석이라하여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선거운동의 양상은 철부지의 투정을 방불케하여 과연 이것이 한나라의 기둥감을 고르는 경합장인가를 가늠하기에 실망이 앞선다. 나라의 동량임을 자처 하는 후보들은 한결같이 급변하는 내외정국에 대응할「변화」를 강조하면서도 실상 행동거지는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짧은 겨울 한나절을 쪼개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도 모자라 TV앞에 선 후보자의 면면은 거의가 스스로를 과대포장하기에 여념이 없다.
일부 후보들은 하찮은 일에까지 자랑을 늘어놓는데다 실현성없는 공약을 남발함으로써 뜻있는 유권자로터 빈축을 사고 있다.
권모술수에 능란한 일부 정치인과는 달리 남의 고충을 헤아릴줄 아는 넉넉한 궁리야말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 알리려 들지않는 믿음의 결실이다.
이치가 이처럼 불을 보듯 훤한데도 우리로 하여금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하는 사실은 세상사 때로는 겸손이 불이익을 당하고 한편으로 위선이 실속을 챙기는 불합리가 없지않다는 것이다. 이 순간 정치집단이 벌이는 말잔치를 보고 듣고난 느낌은 마땅히 책임지고 통회해야할 대목은 숨기고 오히려 겸손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애써 생색을 내기에 주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차한 일부 경향을 가지고 지나치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보면 이 땅을 굽어 살피시는 신(神)은 역설적인 풀이로 이렇게 달래줄듯 싶다.
『걱정하기에는 이르다. 남을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 모르게 하는 자는 구제받을 것이요, 이와는 달리 잇속을 챙기고자 오른손의 하는 짓을 왼손이 알게 하는 자에게는 구제의 손길은 거두어질것 이다』고. 이점을 감안할때 다가오는 12·18대통령선거만이 아 니라 새해들어 이어질 모든 선거결과는 모름직
이「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는 가르침을 이행하는 후보에게만 응분한 표가 모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 1992년은 세밑을 재촉하는 노을이 물들어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이해에 못다한 일이 남때문이 아니라 「내탓」임을 깊이 뉘우쳐야 한다. 스스로 대속(代贖)하는 자세는 바로 이웃의 허물을 안겨받는 사랑
인즉 이점은 「요셉의 집」과 「꽃동네」의 「하찮은 소식」이 하찮게 잊혀지지 않는 까닭이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 모르게 하는 참된 행함은 그 값어치에 걸맞게 외롭고도 험한 작업일 것은 미루어 짐작 되고 남는다. 그러나 옛 성현은 이르기를 덕이 있는 곳에 반드시 따르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어서 정작 외롭지 않으리라는 덕담은 어김없는 진리이다. (德不孤必有隣-論語-)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김윤근 신부님 이원복씨 김영대씨 박용휘씨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부터는 김경룡씨(인천일보 논설위원) 주강씨(경대의대 해부학 교수) 박옥걸씨(아주대 사학과 교수) 박일영씨(효성여대 종교학과 교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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