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시간만 나면 오래된 교우촌을 찾는 일이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그것에 가면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이제는 모두가 떠나는 곳이 대부분이라 그렇겠지만『이것 조사해서 무엇하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그 경우는 좀 나은 편이다. 이야기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이 나오고, 말이 잘 통하면 차라도 한 잔 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지막지하게『우리 집안은 본래 양반 집안이었는데, 천주학 때문에 이런 산골로 쫓겨와 못 살게 되었다』고 하며 말도 못 붙이게 하는 사람도 많다.
얼마 전, 충청도 해미 땅에 있는 한 산간 교우촌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교우촌이 이룩된 지 1백20년 정도 된 곳이다. 그 부근에 가서 물으니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아, 그 성교촌』이라고 하면서 얼른 가르쳐 준다. 1950년대만 해도 이곳의 신자수가 2백 명 가까이 되었지만 지금은 30명이 안 된다고 한다.
그곳에서 공소회장을 지낸 89세 된 교우분을 만날 수 있었다. 외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자꾸만 오라 하지만, 이곳이 좋아 혼자서 사신다고 한다. 안채는 허물어져 있었고, 사랑채 한 칸 방을 겨우 차지하고 계셨지만, 그 한 쪽에 있는 오래된 성물과 서적을 보면서 그 안에 옛 신자들의 냄새가 깊게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분의 말로는 조부 때부터 이곳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일구었다고 한다.
박해로 인해 쫓겨온 이곳의 새 터전을 떠나기가 그토록 힘드신 것일까? 대낮인데도 불을 켜는 그 방에서, 그동안 찾아다녔던 그 어느 교우촌의 신자들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분에게서는 어려웠던 삶에 대한 회한이나 신앙에 대한 후회 같은 것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슨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교우촌을 지켜 온 분. 문 앞까지 나와『사과라도 깎아 줄 것을 그냥 보내서 … 내 말만 늘어놓다 보니』하는 말씀을 들으며, 까닭 없이 그저 죄송하기만 했다.
언제 다시 찾아가서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순교자들이 체포되어 넘었다던 골짜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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