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지구촌의 생명문제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제는 한 인간, 한 나라가 살고 죽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지구전체, 문명전체, 생태계 전체의 살고 죽는 문제이다. 지금 지구에 가해지고 있는 집단적인 생명파괴, 생명경시, 생명말살 이라는 인간의 죄악을 덮어둔 채로 과연 창조주 하느님을 믿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지구동산(창세기 2, 15)을 파괴하고 수탈하고 소모하는 집단세력에 대해서 아무런 신학적 반성이 없을 경우 우리에게 창조신학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좋은 세상」이 왜 이렇게 체르노빌 같은 참혹한 세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할 때이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이 쓰고 남도록 풍족하게 자원을 주셨는데 왜 제3세계는 모자라고 가난하고 생명이 죽어가는가? 그것
은 창조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제1세계에서 너무 많이 소유하고 소모하고 제3세계의 환경을 약탈하였기 때문이다. 약탈하는 것은 예수의 복음에 배치된다. 그것은 바로 폭력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이 그때이다. 환경운동가 조나단 포리트는 한시라도 빠르게 생명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금후 10년간의 전망은 어둡다고 경고한다. 새로운 천년을 앞으로 8년 남겨두고 있지만 우리 교회는 재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지구사목」을 정립하지도 못한 실정이다.
이 사목을 정립하는데 있어 노아 이야기(창세기 6, 11~9, 17)는 우리에게 심오한 메시지를 전한다. 어쩌면 노아는 최초의 생명운동을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노아에게 자연을 보존하도록 명하셨다. 『목숨이 있는 온갖 동물도 암컷과 수컷으로 한쌍씩 배에 데리고 들어가 너와 함께 살아 남도록 하여라』(창세기6, 19) 지구상에 3백만 종류 이상이 사라지고 있음을 볼 때 이 말씀이 주는 메시지는 중요하다. 노아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야훼께서 노아와 계약을 맺을 때 계약 상대가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의 전체 세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번 계약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계약의 당사자로 포함된 것이다. (창세기 9, 8~17)
그러므로 생명의 폭을 넓히자. 태아도, 농민도, 사형수도 그리고 산, 나무, 숲, 산맥, 돌, 물벼, 메뚜기까지도 생명으로 느끼는 감성을 회복 시킬 때 우리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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