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탐욕으로 찌든 이 세상에 빛 하나가 떨어졌다. 차마 마주하기가 송구스런 빛이다. 그러나 그 빛의 눈부심은 온 누리를 밝히고 있다. 눈물과 한숨, 원망과 시샘조차 덮어줄 빛이다. 가난과 병고속에 찌들고 멍든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빛이다. 순결하고 깨끗하며 지순하기 만한 이 빛은 아무도 거부할 수가 없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다.
우리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의 희망도 예수그리스도다. 빛과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그분을 맞이하는
오늘은 기쁨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다.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쏟아지는 그 찬란한 빛속에서, 희망안에서 우리는 깨끗한 내일을 보고자 한다. 티없이 맑고 고운 구세주의 성심안에서 우리의 눈물이 거두어질 미래를 보고자 한다.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또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준비는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아직도 이 땅에는 그리스도의 빛이 고루 비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직도 무수히 많고 또 많기 때문이다.
우선 소년소녀 가장들이 있다.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도 있고 백혈병과 싸우며 죽어가는 어린이도 안타깝지만 아직 있다. 점심을 굶는 어린이, 쪼개어진 가정 속에서 삶의 의욕을 잃은 어린이들도 많이 있다.
어릿광을 피울 나이에 삶의 전선에서 힘겹게 싸우는 어린이들을 보는 것은 참으로 눈물겹다. 새벽 단잠속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이른 시각에 신문을 돌리며 스스로 먹거리를 마련해야 하는 아이를 보는 것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년소녀 가장들은 싱싱하고 씩씩하게 주어진 현실을 헤쳐나가고 있다. 삶이 지겹다고 실패했다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현실앞에서 이들의 모습은 아름답기조차 하다.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은 또 어떤가. 단지 건강하지 못한 심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너무나 잔인하다. 너무 혹독하다. 넉넉한 부모를 만난 어린이는 행운아에 속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이 어린이들의 목숨은 대책이 없다. 하늘에 맡길 뿐이다.
백혈병이라 불리는 어린이 혈액암 환자들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대부분 수술로 치유가 될 수 있는 심장질환에 비해 치유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이들 혈액암 어린이 환자들은 돈이 없으면 그나마 속수무책이다. 치료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어린 생명은 사그라 들고만다. 뼈저림과 통한의 눈물만이 가득고인 부모들의 가슴에 영원히 묻히고 만다.
집없는 설음속에 혹독한 시련의 계절, 겨울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의 이웃으로 존재한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농어촌 문제, 그 부산물로 떠오른 인구의 도시 집중화는, 마구잡이 개발과 그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하는 도시빈민 문제와 맞물려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겨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외국인 근로자 문제도 더이상 방관해서는 곤란하다.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이들은 불법이라는 틀속에 갇혀 비인간적 대접에 시달리고 있다. 법을 어겨서까지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불법이라는 약점을 이용, 이들의 인간적 권리를 박탈하는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아무리 구조적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인간적 약점을 빌미로 가난한 외국인마저 울려야 한다면 우리는 정말 잔인하기 짝이 없는 민족임이 틀림이 없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듯 박절한 민족이었는가. 언제부터 우리가 남의 고통을 밑천 삼아, 내 이익으로 챙기는 민족이었단 말인가. 우리가 언제부터 불쌍한 외국인들의 마음을 피멍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단 말인가.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이라는 필름속으로 들어가보자.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바로 이 땅위에서 땀흘려 돈이라는 것을 벌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바로 20년전 우리의 자화상이다. 형태와 양상은 조금 다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노동력을 외국에 팔아 우리의 가정을 키웠고 국력을 키웠다. 벌써 잊었는가.
잊어버리기엔 아까운 기억들이다. 묻어버리기엔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다. 결코 과거지사가 아니어야 한다. 과거지사로 들리기에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초라하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 길은 우리 모두가 어제와 같은 마음으로 걸어가야만 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이보다 강력한 메시지는 없다. 빛으로 오시는 그분을 맞기 위한 준비는 우리가 빛이 되는 것이다. 사랑으로 오시는 그분을 영접하는 우리의 준비는 우리가 사랑 그 자체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 길은 소년소녀 가장의 눈에서 눈물들을 닦아주는 일에서 시작될 수가 있다.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수술비를 나누어 부담하는 일에서 비롯될 수가 있다. 치료를 받지 못해 꺼져가는 어린 혈액암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서 찾을 수도 있다. 그들에겐 아무리 작은 사랑이라도 소중치 않는게 없다. 그 작은 사랑이 모여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집없는 이들이 집없는 설음 때문에 삶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도록 나눔의 신비를 실천하는 일도 우리에게 맡겨진 몫이다. 불법이라는 틀에 갇혀 비인간적, 비인격적 처우에 눈물짓는 중국동포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향한 구원의 손길도 사랑이라는 이름이면 해결이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탄생 그 구원의 빛은 진정 그들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만 있다면 92년 이 성탄절은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하게 보낼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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