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석 김일성의 사망으로 발생한 몸살이 그가 죽은 지 보름이 가깝도록 나을 기미가 없다. 한 인간의 죽음과 그로부터 파생한 국가적 아니 국제적 충격이 이다지 큰 것을 보니 아마도 그가 인물은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죽은 현재 정치판을 중심으로 대학 등 사회 일각에서 김일성 사망 쇼크 상태에서 이처럼 벗어나지 못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김일성, 그는 죽고 말았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죽음은 어이가 없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 것처럼 의외의 사건으로 우리들에게 전달이 되고 있다. 북녘에서나 통용이 된다고 믿었던 그의 불멸설이 어쩌면 우리의 의식 깊숙한 곳까지 파급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 정치 일각에서조차 그의 죽음에 갈팡질팡 하는 것을 보니 더더욱 그렇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 김일성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 방방 뛰었던 언론들이나 상식을 뛰어넘은 국회의원들의 발언, 대학가의 철없는 망동, 그리고 오랜 침묵 속에 눈치만 보고 있던 정부의 태도는 곧 북한을 상대로 통일을 논하고 연구해온 우리의 실체다. 진정 통일을 향해 북한의 실체와 실상을 제대로 연구하고 준비하고 있었는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누가 뭐래도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무수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수백만 이산가족의 눈물을 외면했던 전범이자 인간답게 살아야 할 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한 이 시대의 독재자이다. 그의 사망에 조의 표명을 논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직한 평가였다.
혹자는 용서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리스도교적 사상에서 보면 용서가 안 될 것도 없다. 그러나 용서도 그 사람이 저지른 사실에 대한 명확한 규명작업과 진단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지금 우리 모두는 이 일을 잊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지금이라도 그를 추종하는 집단이 그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청한다면 용서 못할 것도 없다. 물론 현재 일부 인사들과 학생들이 주장하는 조의 표명이나 조문 사절 파견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침묵하는 다수 국민들의 정서가 이를 수용한다는 전제가 붙을 때이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면 침묵하는 편이 낫다. 무분별한 발언으로 국민 정서에 혼란과 아픔을 주기보다는 정부든 정치인이든 차라리 침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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