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맘이 설렌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하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을 선물을 기대하며 잠들던 그 어린 밤부터 교회에서 들려오는 고요하며 찬란한 성가까지 온 가족과 친구와 함께하는 한바탕의 파티가 떠오른다. 그러나 3년 전 아일랜드에서 맞이한 성탄은 일단 기대보다는 염려가 앞섰다.
어린 두 아들이 한 해 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크리스마스를 멀리 타국에서 쓸쓸하고 재미없게 보내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다른 나라, 특히 그리스도교 문화가 뿌리 깊은 미국이나 유럽지역에서 지내는 크리스마스는 이방인에게는 무척이나 외롭다. 게다가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기 때문에 긴 연휴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장만해야 하는 걱정까지 겹쳐진다. 그런데 마침 친하게 지내던 북아일랜드에 사는 친구가 집으로 초대를 했다.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기차를 운행하지 않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를 초대하려면 기본적으로 3일 밤은 친구의 집에서 묵어야 했다. 복닥거리는 두 아이와 나를 초대해 잠자리를 준비하고 며칠을 같이 먹고 지낸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기에 정말 감사하고 수고로운 초대였다.
기차를 타고 내가 살던 아일랜드 공화국의 더블린에서 출발해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의 친구 집까지 가는 동안, 국경을 넘는 느낌도 없이 자유롭게 통행하는 현재의 아일랜드가 부러웠다. 다르면서도 많이 닮은 한반도 땅에도 끊긴 철로가 다시금 이어져 달릴 수 있는 날이 곧 올 수 있을까 생각하며 북아일랜드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친구의 시골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생전 처음 장식이 아닌 난방 수단으로 사용하는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타는 불꽃을 마냥 바라보며 즐거워했고, 친구가 미리 준비해둔 정성 가득한 전통 음식과 겹겹이 쌓아둔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풀어보며 웃음이 가득했다.
나에게는 작은 성당에서 드린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가 압권이었는데, 사제를 지원하는 젊은이가 없어서 연세가 거의 90세가 되신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약간의 건망증 증상이 있으셔서 미사 순서를 몇 개 뛰어넘는 바람에 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난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였음에 아이들은 쾌재를 불렀다.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주는 성탄 선물이라며 아일랜드어로 나지막이 불러주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그 어떤 강론보다 큰 사랑과 감동을 주었다.
이 귀한 초대에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수 없다며 인사를 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자기는 종종 성탄 때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초대한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성탄은 우리끼리의 잔치를 창밖에 서서 바라보는 성냥팔이 소녀를 안으로 초대해 같이 성냥불을 밝히려는 소망과 몸짓이고, 낯선 고장에서 온 이방인을 내 안으로 초대해 나를 같이 나누는 선물이 아닐까. 북녘에서 낯선 땅으로 온 그들을 내 안으로 초대해 우리가 되는 크리스마스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