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뜰에 나서니 겨울 추위가 매섭습니다. 동지 지나고 소한도 다 지났건만 모과나무에는 아직도 이파리 몇 개가 힘겹게 매달려 있습니다. 채 가시지 않은 푸르스름한 어둠 속 시커먼 나뭇가지 사이로 샛별이 초롱 합니다. 저리도 영롱한 새벽별에 옛 유다 예언자의 노래가 새삼스럽습니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는구나, 이스라엘에게서 한 왕권이 일어나는구나.”
오랜 세월 기다려온 메시아를 향해 샛별보다 더 멋진 표현은 없어 보입니다.
힌두교 철학자이자 교육가로 인도 대통령까지 지낸 라다크리슈난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는 보통 사람들보다 신을 깊이 생각하고 하늘의 뜻을 밝게 깨달아 되새기며, 신의 가르침을 용기 있게 실천함으로써 삶의 지평을 넓혀주는 이들이 아주 가끔씩 나타난다, 그러한 분에게서 나타나는 빛은 어둡고 뒤틀려있는 세계에서 활활 타오르는 횃불처럼 빛난다.”
저 유다 예언의 다음 구절은 이렇습니다. “그가 모압 사람들의 관자놀이를 부수고 셋의 후손의 정수리를 모조리 부수리라.”
참으로 딱하게도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이 예언을 믿는 많은 이들이 이 비유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과 믿음이 다른 이들의 관자놀이며 정수리를 모조리 부수고 있습니다.
엊그제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곳은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이니 그런 이야기하지 말고 다 같이 더불어 평화로이 살자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에 반대하는 나라들에게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반대결의를 한 유엔에 대해서 분담금을 줄였습니다. 아직도 ‘야곱에게서 솟아오를 한 별’을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도 트럼프에 화답하여 공원이며 역, 거리에 ‘트럼프’라는 이름을 붙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 마구 총을 쏘아대고 전투기로 폭격을 합니다. 전임 대통령 오바마는 자신이 기독교인임에도 이교도나 무신론자들을 배려해서 성탄절에 ‘해피 할러데이’기쁜 축일이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복원시켰다며 자랑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지를 수호하는’ 트럼프와 이에 반대하는 교황님 중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이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핍박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일은 역사상 수도 없었습니다. 미국 복음주의자의 80퍼센트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구순을 바라보는 우리 어머니는 아마도 레지오 활동을 하는 최고령자일 겁니다. 이 모임 덕에 막내딸 뻘 되는 40, 50대로부터도 ‘형님’소리를 듣고 지냅니다. 노인네는 매일 미사를 다녀와서는 레지오 할머니, 아줌마들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날은 이런 하소연을 했습니다. ‘아, 내일모레면 죽을 내 친구 아가다가 나더러 이북에 쌀을 보내면 총알이 되어서 돌아온다며 이북 놈들 다 죽여야 된다고 난리를 치는구나. 만날 성당 나오면 뭐 하냐, 저리 이북 사람들을 미워하는데.’
새해 첫날 김정은 조선노동당위원장이 평창 올림픽 성공을 기원한다면서 대화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는 정권을 확고하게 장악하려고 사람들을 죽이고 수용소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아가다 할머니가 저주를 퍼부을 만도 합니다.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평화를 말하면 평화로 답해야 합니다. 길이 그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북측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문을 아예 닫아걸자는 건 전쟁을 하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닙니다. 사실 무서운 핵무기와 미사일을 제일 많이 가진 나라는 바로 미국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구약의 예언대로 모압의 관자놀이와 셋 후손의 정수리를 부수는 건 트럼프의 핵미사일이나 이스라엘 전투기가 아니고 바로 당신이 가르치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어둡고 뒤틀린 이 세계를 활활 태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