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신앙생활의 반성과 신앙의 진리에 대한 갈증은「신앙학교」(구 신학강좌)의 문을 두드린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등록을 하고 나니 과연 3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을 성실히 교육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다.
그동안 6학기에 걸쳐 17개 신학과목을 강의 받아오면서, 때로는 세속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소홀히 지나치고자 하는 마음의 유혹도 더러 있었다. 꼭 알아야만 올바른 믿음이 아니질 않느냐는 의문과 회의가 겹쳐 주저앉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열강하시는 교수 신부님들의 주옥 같은 진리의 한 말씀 한 말씀이 가슴에 와닿아 놓치기가 싫었고, 주관처의 헌신적 봉사와 열심한 수강생, 기대를 갖고 도움을 주는 주위의 모든 감사한 분들의 뜻을 저버리기에는 송구한 마음이 들어 병 중에서나 잡다히 바쁜 와중에서도 빠짐없이 수강하였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자신의 의지보다는 그동안 선택하시어 시간과 건강을 허락해주시고, 진리의 샘으로 이끌어주신 그윽한 주님의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하느님의 인식없이 올바른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 필자도 오랜기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하느님의 체험없이 기복적이고 의무적인 믿음과 외적활동에만 치중하는 반쪽 신자였다. 이는 신앙의 진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 신앙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와 밖에서의 삶이 다르며 복음을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이중적 생활에 종종 내적 갈등을 겪어왔다. 이러한 신앙생활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또한 신앙학교를 찾은 계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실천에는 희생이 동반된다. 하느님을 인지하고 그 사랑에 응답하기 위하여 신앙학교에 나온 수강생 대부분은 숱한 세속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강의가 있는 날 사회의 일반모임은 응당 빠져야 했고, 부군의 반대를「평생소원」이라며 설득하여 직장일과 가정생활에 바쁘기 그지없는 가운데 시간을 쪼개어 나오는 사람, 강의를 듣기 위해 시간에 쫓긴 나머지 담을 넘어 들어오려다 넘어져 다치는 사람. 교통사고로 인하여 아직 완쾌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수강에 임하는 사람 등 많은 귀감된 표양과 열정에 가득 찬 강의실 분위기는 함께 더불어 심취하게 만들었다.
하루는 신앙학교에 가기 위하여 퇴근 후에 들리는 간이식당에서 라면을 들고 있는데 후덕하게 보이는 주인 아줌마가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밥 좀 드릴까요?』
주위의 시선을 살펴가며 가까이 와서 나즈막히 묻는 모습을 보니, 매주 목 금요일만 되면 라면을 시켜 먹고 가는 꼴을 보고 저녁 밥값을 아끼기 위하여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지독한 구두쇠나, 아니면 가정도 없고 벌이도 시원찮은 홀애비 정도로 여겨 측은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강의가 끝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밤 10시가 넘기 때문에 유별나게 배 고픔을 참지 못하는 나로서는 궁여지책으로 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갔다. 이러한 까닭을 이 아줌마가 알 턱이 있겠는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정중히 사양을 하고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 나는 지금 영원히 배 고프지 않을 생명의 말씀으로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곳에 초대 받아 가는 중이랍니다』
신앙학교는 나의 신앙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표류하던 삶의 행로에 굳건한 지표를 설정해주었고, 보다 체계적이고 깊은 신심을 유발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드러나게 달라진 점이 없는 자신을 질책하면서, 그동안 듣고 익힌 은총의 선물들을 지식자랑 차원을 넘어 이웃과 나누는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한 도움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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