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무슨 일이신데요』『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옵니다. 라면을 잘 안 먹으니까 생각이 있으면 갖다 먹으라는 겁니다. 산더미처럼 마냥 쌓아놓을 수도 없고, 시간이 없어서 갖다 줄 수가 없으니…』
전쟁이 날 것인가? 나지 않을 것인가? 한때 소동 아닌 소동을 일으킨 사재기 사건들이 지금은 월드컵 축구 이야기와 장마 걱정, 남북 정상회담 준비로 묻혀버린 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온 국민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던 가상 시나리오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연일 앞다투어 보도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극히 일부라 믿고 싶습니다. 만일의 비상시에 대비하기 위하여 뭉칫돈 인출, 주가 곤두박질, 암달러 소동, 쌀, 부탄가스, 소시지, 캔 종류, 방독면, 특히 라면을 상자 채로 열 상자, 스무 상자를 사야하는(특히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은 철없는 아이들까지 사 재기에 이곳 저곳으로 동원됐다는 이야기) 불안심리도 문제였지만 아우성 치는 듯한 모습을 신문과 텔레비전에 별란 특종처럼 보도하는 일부 언론과 이때를 잘 이용해보려는 기업인과 정치인들은 물론 거기에 춤을 추었던 얼키고 설킨 우리의 현실. 우리, 나 자신의 문제가 더 크지 않았나 되돌아봅니다.
몇 년 전의 일입니다만 소각장에 무심코 버려진(다 쓰고 버린) 부탄까스 통이 터져 30m 정도 떨어진 건물의 2층 유리창문을 뚫고 건물 안으로 날아간 일을 기억해보면서 얼마나 급했으면 앞뒤 생각 하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사재기를 했을까.
전쟁 시나리오가 아니라 부탄까스 폭발 가상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집에서 펑! 저 집에서 펑! 아파트 아랫층에서 펑펑! 윗층에서 펑펑! 마치 따발총을 쏘듯, 지뢰밭이 터지듯 온 천지가 펑펑펑펑!!!! 거기에다 주차장에서 펑! 이면도로에서 펑! 인도에서 주차된 차 안에서도 펑펑펑!!! 펑펑!!.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시오.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갑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시오.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도 못합니다. 당신들의 재물이 있는 곳에 당신들의 마음이 있소』(마태오 6, 19~21).
극히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불안해하여 닥치는 대로 사재기를 하고, 또한 혹시나 해서 비자 발급을 서두르며 손해 보면서까지 통장 해약과 주식을 서둘러 매각하는 사람들을 결코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별난 사람 다 있네」하며 탓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 심정을 이해하는 편이 훨씬 더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만큼 땅에 재물을 쌓아두었더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서둘러 비자를 신청하거나 뭉칫돈을 마련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게까지 사재기는 안했을거야.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라면을 상자 채로 집안 가득히 채우지는 않았을 거야. 그게 무어람? 얼마나 혼자 잘먹고 더 살겠다고…. 그것 봐,「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서 반품이 안 됩니다」라고 신문에까지 나왔잖아』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탓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이 세상에 재물을 쌓는 것이 삶의 의미요 목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나와 좀 다르다고 탓하고, 그들의 의식전환을 시도하기 보다는 우리, 나 스스로 변화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빠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도 내 문제는 내가 더 잘 알 수 있으니까.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시오.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이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도 못합니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우리는, 나는 사재기 모습의 거울을 보면서 하느님 나라에 재물을 쌓는 나의 열정을 거울 삼아 비추어보며, 나 자신의 참 모습을 돌아봄이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물론 며칠이 지난 지금에 와서「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닌데」 하면서「라면을 잘 안 먹으니까 생각이 있으면 갖다 먹어라」는 전화,「집안 가득히 쌓인 라면을 언제까지나 마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이야기를 좀 이해하는 편이 마음 편한 일이요 현명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얼마나 값진 라면입니까? 값이 문제가 아니라 한때는 여차하면 자기 생명을 단 얼마 동안만이라도 연장해 주리라고 믿었던 라면이 아닙니까. 더욱 소중한 것은 라면 상자를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아놓고 잠시나마 안도의 숨을 쉬던 그것을 준다고 하는데 너무 속상해야 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이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 물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크게 유익합니다』(1디모 6, 6~7)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아이들까지 총동원하여 사재기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준다면 그 마음에 무슨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정말 잘 들어두시오.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은….
『남을 판단하지 마시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당신들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 하는 대로 저울질을 당할 것입니다』(마태오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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