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교사는 정말로 팔방미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저 혼자만의 느낌이 아닐 것으로 보여집니다. 저 역시 주일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캠프장에서 장작 쌓는 막노동(?)에서부터 주보 편집과 같은 우아한 노동(?)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한 일을 해보았습니다.
지금도 글도 쓰고 교정도 보면서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 좋은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디다케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노동 중에서 글자 교정을 보는 일 만큼 힘든 일은 없다고 여겨집니다. 교정은 자칫 잘못하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을 뿐더러 역사까지 뒤바꿔놓을 수 있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기에 교정에 얼킨 일을 오늘 한 말씀 드릴까 합니다.
벌써 십수 년이 지난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주일학교 교사직 외에 주보 편집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주보를 받아 성당 입구 책상에 펼쳐놓고 아무 생각없이 훑어 본 다음 주일학교 교사 회합실로 내려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좌 신부님이 불같이 화가 나셔서 찾는다는 사무실 전갈이 있기에 쏜살같이 보좌 신부님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보좌 신부님 방에 도착하니 주보를 펼쳐놓고 제 얼굴 한 번 주보 한 번 쳐다보시는 신부님의 심기가 보통이 아님을 알고 도대체 무슨 오자가 나왔길래 저러시나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본래 교정을 보다 보면 글자가 틀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오죽했으면 편집과정의 글자가 살아서 움직인다고 활자라고까지 했겠습니까. 하여간 보통문제는 아니겠구나 하고 눈을 내려 신부님이 지적하시는 곳을 본 저는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습니다.
무슨 오자인지 궁금하시지요. 당시 주보에 혼인미사 공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혼인미사 공지에 오자가 나왔습니다. 이름이나 날짜가 틀린 것도 아니고, 신랑 신부가 서로 바뀐 것도 아니였습니다. 설혹 그런 것들이 바뀌었다고 해도 신부님이나 저나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뭐하고 되었냐구요. 혼인 장소가「○○○본당」으로 나왔어야 옳은데 그만 「○○○불당」으로 나왔지 뭡니까.
이나 틀려도 정도껏 틀렸어야지요. 성당으로 혼인성사를 받으러 온 사람을 절로 혼인 예불을 받으러 보냈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난리가 났겠지요. 우선 근처에 돌아다니는 교사를 전부를 불러 모아서「불」자를「본」자로 고쳤습니다. 볼펜으로 북- 북- 지워가면서 말입니다. 하기는 「불」자하고「본」자가 생김새가 비슷하니 교정과정에서 미꾸라지 빠지듯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이후 저는「불」자 하고「본」자만 보면 혹시 바뀌지 않았나 싶어 두 번 세 번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그분들이 누군지 기억도 없습니다만 하마터면 절에서 혼인미사를 드릴 뻔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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