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 저녁, 아침의 새소리와 밤을 노래하는 소쩍새, 수목이 우거진 새벽의 골짜기, 버드나무 잎을 움직이는 바람, 고요한 밤과 고독, 침묵과 성찰, 지구 속의 인간, 그리고 시와 기도의 피정을 마쳤다.
노리치의 줄리앙의 말대로 우리는 하느님 속에 존재하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하느님은 우리들 속에 존재하신다는 믿음으로 내가 살아온 모든 희노애락, 이 모두를 감사드린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데 (사도행전 17, 28) 나는 자주 엉뚱한 곳에서 하느님을 찾는다.
칼 융은 우리가 영혼을 잃게 되는 방법은 자신의 외부의 신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우리의 기도나 미사가 외부의 신에 전달되는 종교행사가 아닌데도 우리는 자주 또는 주로 위만을 쳐다보고 살아왔다. 이른바 피정을 할 때에도『하느님은 외부에 계시고 나는 여기에 존재한다』식의 이원론을 확인하였다.
이 두려움과 죄의식에서 우리는 회개하고 자신 안에 파고들며 자신의 더러움을 세탁하려 했지만 늘 내 자신은 그 모양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저 외부에 있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했고 나는 늘 유치한 수준의 상태에서 외부의 신에 매달리면서 영혼이 소외되고 있었다. 이 문제는 하느님과의 주체와 객체에 관한 것이다.
하느님도 죽이고 인간의 영혼도 죽이는 것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바로 루가복음 17장 21절이다. 구약의 아가서와 에스텔서에도, 그리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태양의 노래에서도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만유내재신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범신론이 아니다. 범신론은『모든 것은 하느님이며 하느님은 모든 것이다』라고 말한다. 반면에 만유내재신론은『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다』를 뜻한다. 이 만유내재신론은 교회 안에 타락, 구원의 틀이라기보다는 창조 영성의 중심을 향한 전통이며 세계를 거룩하게 성사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이다. 에크하르트가 표현한 것처럼『모든 것은 하느님을 찬미한다. 어둠, 성실, 결점, 악 또한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축복한다』.
우리가 흔히 피정을 할 때 성체조배나 침묵 때문에 하느님의 흔적이 두루 미쳐 있는 자연 안에서, 그리고 형제 안에 있는 아픔과 대화를 위한 열망을 무시해버린다. 예수께서는『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사실 모든 것은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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