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대북 제재 방침이 발표되면서 한반도에 전쟁 분위기가 전에 없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는 대북 제재가 강행된다면 전쟁 상황으로까지 갈 수도 있다며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는 국민들을 향하여「안보 불감증」에 걸려 있다고 짜증 어린 질책을 하더니만, 중상류층이 모여 사는 고급 아파트 지역 백화점에서 비상 물품 사재기가 시작되자 이제는「안보 과민증」을 들먹거리면서 전쟁 분위기를 무마하기에 호들갑을 떨고 있다.
과연 북핵문제가 전쟁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쟁의 대가는 무엇이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면 전쟁 위기론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저의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들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갖지 못한 채 국민들은 언론의 널뛰기에 농락 당하고 있다. 곧 해결될 듯하다가도 전쟁 분위기로 이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북핵문제를 둘러싼「전쟁과 평화」의 시소게임이다. 그러나 이 위기의 실상을 냉정하게 점검해 보면, 위기론의 뿌리에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현 위기를 억누르기는 커녕 조장하면서 신 공안 정국을 조성하고 있는 수구세력이 있다.
지금 한ㆍ미 두 나라 정부는「대북 제재만이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북 제재에서 우선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경제 제재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북한의 대외 의존도(국민 총생산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가 11.9%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ㆍ미ㆍ일 등의 경제 제재가 북한 경제에 미칠 수 있는 타격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북한에 원유와 식량을 수출하고 있는 중국이 이 경제 제재에 불참할 경우 이 경제 제재는 실효성이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경제 제재가 북한에 별 타격을 주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무력 제재다. 무력 제재라면 우선 영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선제 폭격이 예상된다. 대북 선제 폭격은 단순 충돌이 아닌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은 걸프전 때처럼 미국의「낙승」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를 원치 않는 중국ㆍ러시아와의 심각한 긴장관계도 감수하여야 하며, 전면전으로 초래될 한반도의 파괴와 미군의 피해까지 감안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대단한 모험임에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현 단계 북한의 붕괴를 둘러싸고 미국 내 자본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상충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언론이 대북 제재 강행을 주장하며 전쟁 분위기를 높이고 있는 현상의 이면에는 미 군수산업의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 기류의 해소로 인하여 미국의 군사산업은 광범한 도산과 합병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 미국은 그동안 생산해 놓은 첨단무기를 팔기 위해 가수요를 만들어서라도 군수산업의 쇠퇴 속도를 완만히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찾아낸 첫 번째 목표가 이라크였다. 걸프전이 끝나자 이제는 북한이 또 다른 목표가 되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지리한 긴장의 파고를 타고 있는 한반도에 미국은 패트리어트 미사일, 아파치 헬기를 배치하였다. 긴장 국면(또는 긴장의 조성)은 미국이 자국의 첨단무기를 강매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실인 것이다.
대북 제재를 주장하는 강경파들의 입장이 미 군수산업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면 다른 한편 온거론의 뒤에는 민수산업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한반도의 전쟁 상황은 민수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한국은 이제 미국의 중요 교역 대상국으로 92년 미국 총 수출액의 4.1%, 총 수입액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이후 광범한 시장 개방으로 인해 한국 시장의 중요도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심각하게 파괴 당한다면 그 여파는 미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대자본 내의 이해 상충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북핵문제를 조속히 해결해버릴 수도, 그렇다고 쉽사리 전쟁으로 몰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미국으로서는「전쟁없는 긴장상태」가 두 대자본의 이해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균형점인 셈이다. 아슬아슬한 긴장관계의 지속을 통해 미국은 자국 내의 상충되는 두 대자본의 이해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고가의 재고 무기 판매도 가능하며, 극렬한 반대에 부딪힐 시장 개방도 이 국면을 이용하여 슬며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집단 내에서는 수구 기득세력의「준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시해야 할 것이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구태의연한 색깔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안기부와 검찰 등 과거의 권부가 총동원되어 민주운동 진영에 대해 공안 정국을 방불케 하는 교묘한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탄압을 기도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깊은 우려를 감출 길 없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신앙인들은 역사의 진보를 거스르는 이들의 뿌리 깊은 매카시즘의 발호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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