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산업 후 사회(post-industrial so-ciety)라는 새로운 문명 형태로 들어선 시점에서、우리는 매우 혼동스러운 느낌에 자주 빠져들게 된다. 얼마 전의 부모 살해의 어느 패륜아 경우처럼 아무리 고개를 갸우뚱거려도『그랬구나』할 만한 이유를 알아낼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이 가져다준 풍요의 물질주의는 때로는 그것이 성취한 성과가 무색하리만큼의 부정적 측면을 노정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과학 기술에 바탕한 물질적 발전히 중단될 수는 없는 일이나、인류 문명의 존속을 위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사회의 발전을 이룩할 것인가는 앞으로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될 과제로 남는다.
현대사회의 가장 전형적인 특성적 요소는 과학 기술이다. 그것은 발전의 원동력으로서 과학주의의 믿음을 낳고 있어「과학적」이라 하면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것을 뜻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고도 산업화의 과정에서 사람들은「이것이 과연 발전이란 말인가」를 반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물질문명의 비대화가 정신적 진보를 훨씬 앞지르고 있는 현 상황에서、이대로 치닫는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될런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현대 과학은 종교와는 결별한 것으로 보이며、때로는 상충적이라 여겨진다. 그리하여 공룡처럼 거대해진 과학 기술에 대해 제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은 과학과 종교의 사이가 결코 무관하거나 상충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건들에서 매우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예컨대、과학은 중세에 자연철학으로서 가톨릭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고 있었으며、기술분야 또한 가톨릭에 의해 크게 지원됐다. 근대 과학의 출현은 그 자체가 성서적 자연관의 승리에 바탕하여、신의 작품에 대한 탐구의 결과가 그 내용을 이루었다.
자연현상에 대한 합리적 지식 체계라 할 수 있는 과학은 사물을 객관적ㆍ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다른 분야보다 강하다. 그리고 기술과 결합한 현대과학은 인간의 사고 체계와 생활 방식을 지배하는 막강한 지위에 올랐다. 한편 종교는 사람다운 삶의 주체로서의 태도에 관심을 두어 인생의 의미와 생활 규범의 자리에 서서 삼라만상에 대해 그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이 둘 사이에 어떤 정식화할 수 있는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각기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성격을 지니면서 변천을 거듭했고、그 과정에서 때로는 긴밀하게 화합하고 때로는 심하게 갈등하고 때로는 지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때로는 결별한 상태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의 발달에서 종교의 역할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과학과 종교 양측의 성찰을 통한 입장의 재정립을 필요로 하리라 생각된다. 아무리 과학 기술의 첨단시대를 살고 있다 할지라도 이 세상이 과학적 지식만으로 설명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학은 지극히 제한된 부분의 지식일 따름이고、과학의 합리성과 확실성은 제한된 범위와 영역 안에서 성립할 뿐이다.
러셀이『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과학 혁명이 사상의 본질에 관한 물음을 형이상학에 남겨둔 채 현상을「어떻게」기술할 것인가만을 떼어냄으로써 독립하여 근대과학으로 출범한 것임을 잘 드러내주는 표현이다.
과학과 종교의 차원상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둘 사이의 공통의 근원을 찾는다면、과학은 일상적인 것에 머물러 있고、종교는 본래적인 것에 위치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둘은 그 어느 하나로서 완전하지 못하다. 그 때문에도 과학과 종교는 서로 만나야 한다. 더욱이 오늘날의 과학은 그것이 성취한 물질적 풍요를 상쇄할 지경으로 심각한 산업적 폐해와 윤리적 타락의 위기로 우리를 몰고가고 있음에랴.
과학의 편협한 합리성은 이제 지평을 넓혀 종교적 물음까지 고려해야 할 단계인 듯하다. 그리고 종교 측에서는 종교의 비과학성에도 불구하고 결코 과학의 근거인 일상의 현장을 떠나 홀로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문명이 고도화될수록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의 양쪽이 서로 교류하고、정신세계와 물질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은 더욱 절실한 요구가 아닐까. 과학기술의 전대미문의 발전에 의해 불완전한 과학 지식이 온통 세계를 지배하는 지식 체계인 듯 혼돈되는 착각은 바로 잡혀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인간의 삶의 질에 관해 진실로 고만하는 것은 종교를 비롯한 보다 상위의 지식 체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맡아야 할 역할이라 생각된다.
오늘날의 다원화된 세계에서 인간의 지적 활동의 여러 차원이 균형과 조화를 갖춤으로써、과학과 신학과 철학 등의 영역이 상호 보완적 기능을 맡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과학기술사 외에 필수적 요소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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