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행복은 극단적인 반대의 의미를 지녔다. 그리고 그것을 재는 잣대는 어디까지나 재는 본인의 판단에 달렸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일이 다른 이의 판단으로는 불행으로 간주될 때도 흔히 있다.
과연 불행과 행복은 주관의 바탕에 있는 것이냐, 아니면 객관의 바탕에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넝마 같은 옷을 입고 통 속을 거처 삼아 햇빛을 즐기며 행복한 마음으로 살았던 철인 디오게네스는 한 벌의 옷과 지팡이와 한 개의 자루만이 그의 생애의 전 재산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했었다. 그는 명예나 부나 권력 따위는 속물의 찌꺼기로 해석했다.
과연 무엇이 불행이며 행복인가.
나는 여기서 몇 해 전에 있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처음 그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은 수녀님을 통해서였다. 하루는 수녀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베드로 형제님 드디어 알아냈어요. 근 두 달 동안이나 성모님 앞에 흰 장미 한 송이를 놓고 간 사람을요』.
나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흰 장미 한 송이를 성모상 앞에 바치고 가는 여인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 여인으로부터 흰 장미 한 송이를 성모상 앞에 바치게 된 사연을 듣게 됐다.
나는 그날밤, 그 여인이 한 말을 밤이 늦도록 생각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여인의 말은 나를 잠 없는 밤으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지금 이 땅에서는 저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영세를 받고 천주를 알게 됐기 때문이예요. 거듭 말하자면 현재는 가장 행복하고 과거는 가장 불행했지요. 과거에 천주를 몰랐기 때문이예요. 제가 장미 한 송이를 매일 같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아침마다 바쳐온 까닭은 불행한 과거를 사죄하고 행복한 오늘을 감사하기 위해서예요…』
여인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언어의 표현을 상실하고 말았다. 나는 속삭이듯 내 자신에게 외쳤다.
베드로! 너인들, 이 여인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최헌씨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이소우 교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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