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오늘도 누나는 성직자 묘지에 다녀왔어요. 5월의 계절이라 신부님이 좋아하시던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피어 묘지는 향기로 가득했어요. 하얗게 내린 꽃잎을 덮고 누워계신 신부님은 좋은 시라도 읊으시는지요. 녹색 담쟁이 덩굴이 묘지 담장을 아늑하게 덮고 있고 이름 모를 새들이 신부님의 말씀을 전하는 듯 재잘거리고 있네요.
언제나 낮은 자리를 원하시더니 시제 묘소 30구 중에 제일 밑자리를 차지하려고 그렇게 빨리 가셨나요. 햇볕이 잘 드는 조용한 밑자리에 누워계신 신부님은 많은 분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애석한 마음으로 기도해주시고 가는 줄 아시는지요.
17년 전 신부님의 서품식이 있던 날 서 대주교님께서『죽는 날이 오늘 같아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지요. 신부님의 장례미사 또한 이 대주교님을 비롯 교구 사제단과 많은 신자들의 슬픔과 아쉬움의 눈물 속에 화려하고 장엄하게 봉헌됐답니다. 사제단의 그레고이리안 성가는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상의 소리 같았고 신비스러운 하느님의 무한한 환희를 체험하는 순간이었지요.
사제로서 복된 죽음을 맞으셨다고 서로들 위로했지요. 중국 땅 감숙성 무위시에서 선종하신 신부님이 이곳 성직자 묘지에 안장됨은 많은 분들의 기도와 숨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참으로 주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신부님은 신학교 입학 때부터 하느님께 대한 열절한 사랑을 보이셨고 또한 하느님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었지요. 성모님께는 예수님을 교육시키셨듯이 겸손과 순명의 덕을 간구하셨습니다.
신부님이 아끼시던 그 많은 책들과 성작 제의 남방 수단 모두 그냥 두고 갔으니 다 어쩔까요. 신발은 1켤레뿐이니 중국 땅 어디에 벗어두고 오셨어요. 8년 동안 신으셨던 여름 샌달과 낡은 옷, 소지품은 대만에서 왔더군요. 이발소에 가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책 1권 값이 날아간다며 손수 머리를 깎으시던 신부님의 검소함이 새삼 눈에 선합니다.
지난해 7월,「그동안 희생과 기도해주신 누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쓴 박사학위 논문과 학위증을 잘 가지고 있으라고 맡기시더니 이렇게 땀 흘려 고생하고 받은 귀한 것들은 언제까지 이 누나에게 맡겨둘 것인가요.
1월 6일 신부님이 중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 전화로「좀 어려운 길이니 기도 많이 해주어야겠다. 1월 23일 돌아올 것이다』고 하시더니 이렇게 싸늘한 시신 되어 날짜 맞춰 돌아왔나요. 누나는 김대건 신부님 동상 앞에서 신부님이 어렵게 걸으셨던 그 길을 우리 윤 신부님도 잘 극복하여 당신을 닮은 사제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요. 하느님께서 고생하시는 윤 신부님을 불쌍히 굽어보시어 천상으로 데려가신 것 같아요.
이국 땅 추운 겨울 밤에 참혹하게 피 흘린 윤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나라 신앙의 어머니인 중국 교회와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가셨어요. 윤 신부님이 이루지 못한 하느님의 그 큰 뜻은 남은 우리가 받들어야겠지요. 하루 빨리 중국에 종교의 자유가 왔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나라가 마음껏 하느님을 공경하며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은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이지요. 하루 빨리 중국 땅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그 분들을 도울 수 있는 그날이 오도록 기도해야겠지요.
하늘나라에서 기약없이 동생 신부를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주님께 의지해 열심히 살아가겠어요. 누나의 이 하염없는 눈물을 어떤 위로로 거두어 가시렵니까. 천국서 좋은 위로 주시겠지요.
-누나 말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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