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도 통증이 심한 병도 있을까?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뜨끔뜨끔하고 쑤시고 결리는 옆구리와 등판 통증(대상포진)을 참으며 사랑의 선교회(연고 없는 성인 남자 장애인들을 돌보아주는 곳)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통증이 심하고 약을 발랐기에 운전을 할 수 없어 지하철역까지 봉고차의 도움으로 갔지만 되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통증이 심하면 지하철 바닥에 누워서라도 가겠다는 생각이 점점 흐려지는 가운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별을 보며 체면을 무릅쓰고 계단에 앉아『17년 동안 한 번도 궐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할까. 전화를 걸어 못 간다고 할까』 하였지만 베드로 그레고리오 프란치스꼬 형제님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음마를 배우는 애기처럼 약 20분을 계속 내려가다 보니 그 말썽 많은 사당~과천선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멈추지 않을까? 멈춰 봤자 한 시간이면 되겠지….
『어떻게 서서 60분을 간단 말인가』 혹시나 해서 사방을 두리번 두리번거렸으나 앉을 만한 자리는 없고、그렇다고 체면상 신문지를 펴놓고 앉을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이었습니다.
왼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은 주머니 속의 묵주알을 하나씩 넘기며『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60분만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하면서 앉을 생각은 아예 포기하고 어둠컴컴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신부님 아니세요? 어디 가시는데요? 여기 앉으시지요』. 순간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영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저 모르세요? 제가 국민학교 5학년 때 본당 신부님이셨잖아요』. 60년 전의 일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애기 하나는 등에 업고、또 한 애기는 무릎에 앉히고、또 한 애기는 옆자리에 앉혔는데 아무리 아프다고 한들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의 선교회 후원회 협력자들과 함께 월례회 미사를 봉헌한 후 장애인들에게 성체를 모셔드리기 위하여 각 방으로 갔습니다.
17년을 다닌 이곳인데 웬 일인지 오늘따라 그분들의 모습이 밝게만 보였습니다.
고무 튜브에 앉아서 하루 종일、아니 일 년 3백65일을 생활하는 베드로 형제님. 전에는『참 몹쓸 병도 다 있네、어떻게 저렇게 앉은 채로 먹고、자고、때로는 실을 꼬아서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고…하느님의 뜻이겠지』. 무심코 지나쳤던 생각이었지만 오늘 따라 하느님의 뜻을 잘 받아들이고 사는 그 모습、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그레고리오 형제님. 웬 일입니까. 지난번까지도 그저 누워서 테이프 성가를 듣고 방문객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 한 마디 못하더니、어느 고마운 분이 만들어 주었는지 책을 올려놓을 수 있는 받침대에 성경책을 올려놓고 나무 젓가락을 입에 물고 한 장、한 장 넘기며 말은 못하지만 눈으로 성경을 읽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합니까」하던 일상의 생각들이「저렇게 애쓰는데 나는 요 며칠 동안 아프다고 얼마나 아픈 시늉을 하였는가.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부끄러운 마음、송구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꼭 거짓말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식사하는 시간 이외에는 10시간도 좋고、20시간도 모자랄 만큼 그저 잠만 자는 프란치스꼬 형제님. 안내하는 수사님이『신부님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를 골며 자던 분이 빙그레 웃으면서『아멘 예수님 감사합니다』 인사 만큼은 빼놓지 않고 챙기는 그분의 모습이 오늘 따라 예사롭게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낯이 익지 않은 한 할머님께 어디서 오셨냐고 여쭈었더니『차를 세 번 갈아타고 화양동에서 왔다』고 했습니다.『할머님. 연세 많으시지요』했더니 『주책없이 나이만 먹었지 뭡니까. 금년 나이 여든일곱』이시라고….
『할머님 힘드시지요. 집에서 쉬시지 않고…』 『죽으면 실컷 쉴 텐데 부지런히 다녀야지요』. 차 조심하고 안녕히 가시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왠지 모를 자책감을 가졌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전화를 할까 몇 번씩이나 망설이던 자신의 모습이 더욱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삶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 부르거나 배 고프거나、넉넉하거나「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고맙게도 나와 함께 고생을 해주셨습니다』(필립 4、11~13).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생각하며 지하철 출입구를 막 나오니 아침에 태워줬던 그 봉고차가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님、그저 감사드립니다. 60분이 아니라 하루 온 종일 힘을 주셨습니다. 용기를 주셨습니다. 주님、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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