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2월 10일
오늘 퇴원한다는 사목위 재무분과장 강 베드로씨의 퇴원을 돕기로 하였다. 어저께 병원 방문 때는 다소 혈색이 좋은 듯했으나 오후 2시에 가서보니 창백하고 부은 얼굴이 퇴원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기 병 자기가 잘 안다며 이미 퇴원 수속이 끝난 후였다. 짐을 들고 차에 태워서 그의 가게로 갔다. 부인 역시 무척 피로에 지쳐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었다. 남편의 병 수발과 가게 일과 카지노 딜러를 하며 고달프게 살면서도 성가대에서 틈틈이 봉사하는 등 성당 일에 동참해왔다.
이만큼 건강 주시고 보람되어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릴 수밖에 없었다.
■92년 2월 11일
아들 재민의 만 19세 생일이다. 멀리 있으니 마음껏 축하도 해주지 못했다. 재민이를 위해『사제성소 내려주시고 영육간의 건강과 평화 속에 보람되이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성모님께 간절한 청원기도를 바쳤다.
특히 내가 멀리 떠나와 1년간을 이렇게 활동하는 동안 아내나 아이들에게 영육간별 탈 없이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만일 불행한 일이 있다면 나의 이 모든 활동과 봉사와 헌신에 큰 먹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것이기에…. 제 집안도 못 다스리면서 무슨 바깥 활동이냐고 모두의 조소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최홍길 신부님이 사무장과 함께 나의 집으로 오신다고 전화가 왔다. 급히 김치국과 된장을 끓여 밥과 함께 대접했다. 커피 솜씨까지 발휘했다.
밤 8시 미사 후 식사하고 2월 레지오 월례협의회를 개최했다. 무척 진지하게 토의되었고 다음 달부터는 정식 꾸리아 형식의 회합이 될 것 같았다. 오늘밤은 꾸리아 회원에 대한 의미와 목적 방법을 주로 공부하였고 실질적인 것은 다음 달부터 시작될 것이다.
최 신부님께서 시종일관 참관하시어 격려와 훈화를 해주셨다. 모두들 진지한 태도로 임하였고 뭔가 꼭 해보겠다는 결의가 있는 듯해서 모처럼 기분이 상쾌하고 힘이 났다.
■92년 2월 12일
어제는 룸메이트인 임요셉씨가 나보다 먼저 미사에 참례하고 있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오늘부터 밤 12시에 일하러 간다기에 미리 밥 짓고 반찬을 준비해 두었다. 출근시간이 되었기에 깨워서 밥을 먹게 하고 일터까지 차로 태워주었다. 마치 집에서 애들 뒷바라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 32세인 요셉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풍겨나오는 사람이었다. 인간의 참삶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19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생활에 얽매이다 보니 일하는 시간 외에는 TV를 본다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술잔이나 기울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온 것 같았다.
교리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주모경도 더듬거리고 묵주는 장식품인 양 벽에만 걸어두고 있는 임요셉을 지도해 보니 우선 그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이 생활하는 동안만이라도 최대한 보살펴주어 주님의 사랑과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어야겠다.
■92년 2원 13일
체리힐의「울뜨레야」지 제3호에 싣도록 원고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항구하게 전진하자」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꾸르실료 준비로 시카고의 이병희 회장과 통화하고 토론토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재민이에게 늦게나마 생일을 축하해 주었고 아내로부터 그간의 여러 소식들을 들었다. 아마도 최 페트릭 수녀님이 아내에게 위로전화 주신 모양이었다. 참 고마우신 분이었다.
앵커리지 한인본당 꾸리아 창단 및 간부 교육 피정 등 여러 행사의 준비 때문에 마음이 부산하고 바빠서 인꼴라마리애 단원으로서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지 않았지만 기회가 되는 대로 침체돼가고 있는 쁘레시디움을 부활시키려 노력했고 협의회 운영을 본격적으로 돌보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92년 2월 14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다.
라스베가스의 유윤식 신부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그곳의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을 말씀하시면서 한 번 와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의 만남은 인간적인 교류를 목적으로 하고 본격적인 사목 협조나 피정 교육 등은 다음 기회에 잘 계획해서 함께 하자고 말씀하셨다. 나의 소개를 했더니 잘 알고 있다고 하셨다.
■92년 2월 15일
2주 전에 맞춘 안경을 찾으려고 필라델피아에 다녀왔다. 2중 안경이라 그런지 숙달될 때까지는 무척 불편할 것 같았다. 안경을 쓰고 거울을 보니 완연히 노인 티가 나는 게 오늘에야 나도 어쩔 수 없이「늙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쇼보트에서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하는「남부 뉴저지 한인회 대보름잔치」에 최 신부님과 함께 참석했다. 한인이 3천 명도 채 안 된다는데 제반 사항이 훌륭했고 우리 한국인들의 교양 있는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어 흐뭇했다. 이상인씨의 사회 보는 솜씨 또한 일품이었다. 모처럼 만에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아파트에 돌아와서 자리에 누우니 왜 그리 서글프고 적적한지.
묵주를 손에 들고 가만히 눈을 감고 묵상기도 드리면서「혼자 가는 인생」을 깊이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계속>
■문태준 단장 연락처
Paul T. Moon 7250 yonge st. #606 Themhill Ontario L4J7X1 CANADA
Tel : (416)881-8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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