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던 학생들의 데모도 전국적으로 광주 희생자 추모행사에 모여지더니 급기야는 대학생들의 미문화원 점거라는 사태로 까지 발전했다가 이들의 자진해산이란 결과를 낳고 잠잠해지고있다. 마치도 곪았던 종기가 가시에 찔려 터진 기분이랄까、한줄기 회오리가 지나간 후의 정적이랄까、안도와 허탈이 교차되는 그런 느낌이다.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잠시 냉정을 되찾아 지난날을 조망해보아야 하겠다.
옛날 각각 아들 삼형제를 둔 두남자가 술을 마시다가 싸움이 붙어 한편이 상대방을 죽였다. 복수가 미덕인 시대라 그 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알고 이 남자는 술김에 저지른 실수를 후회하며 큰 근심을 안고 집으로 도망쳤다. 과연 얼마후 말발굽소리가 나더니 밖에서 죽은 남자의 큰아들이 소리쳤다『내 아비를 죽인자는 썩 나와서 나의 복수의 칼을 받으라』고. 벌벌떠는 아버지를 위로하며 이 집 막내아들이 대신 밖으로 나갔다.
『여보세요! 내 아버지의 잘못을 사과하오. 당신의 복수는 당신 아버지에 대한 효성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오. 그러나 당신이 내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게되면 내 큰형 또한 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당신을 죽이게 될것이오. 그 다음 당신의 바로 아래 동생은 당신을 복수하기위해 내 큰형을 죽이게 될것이고、이렇게 해서 나는 마침내 당신의 막내동생을 죽이게 될것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 양가에 남는 것은 무엇이겠소. 그러니 당신의 복수심을 거두어 주시오』했다. 요즈음 우리의 시국을 볼때 점차 극단적인 의견대립으로 치닫고 있어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선량하고 평범한 보통사람들로서는 그저 두렵기만 하다.
극한적인 대립은 마침내 누구를 위한 투쟁이냐? 하는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는 모두가 자멸할 각오로 투쟁하는가? 우리의 투쟁목표가 모두의 자멸을 각오하고서라도 달성해야할 내용인가? 난무하고있는 구호와 요구사항들이 우리의 궁극의 목표인가 아니면 국가민족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란 말인가? 그것이 수단이라면 그 수단을 위해 원래의 목적을 포기해야할 것인가?
이제 우리 모두는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가 각자의 주장들을 재음미하고 다시 정리해볼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서로의 주장에는 다 일부분의 진실이 담겨있다. 어느 한편만이 완전히 옳고 어느 한편은 완전히 잘못이란 판정은 내리기 어렵다. 양쪽 주장이 모두가 타당한 부분이 있고 버려야할 주장이 있다면 여기에 우리의 양식과 도량이 필요한 것이다.
대학생들의 미문화원 점거사태를 우리는 옳은 행동으로는 보지않는다. 그러나 이 사태를 놓고 미국측과 우리측이 취한 태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인내심을 보여준 미국의 태도와 성급하게 해결하려는 우리의 태도와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가있다. 우리 정부가 미국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미측에서 우리정부의 개입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들이 알아서 대화로 풀어 나가겠다는 강력한 요구에 의해 우리 정부로서는 귀추를 기다려 볼 수 밖에 없다는 한수 더뜬 느긋한 자세를 취할 수는 없었을까? 그 학생들도 결국 우리의 아들ㆍ딸들인 것이다. 우리의 아들 딸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행동이 옳지 않았음을 깨닫지 않았는가? 어떠한 강력한 설득이나 처벌로도 가르칠 수 없는 교훈을 깨닫게 했다고 본다.
결국 우리 모두는 수없는 과오와 시행착오를 범하면서 점차 완전에로 발전해 가는것이 아니겠는가? 매사에 미숙한 점이 너무도 많은 우리 인류는 실책과 그로 인한 아픔을 극복해 가는동안 더욱 성숙해지는 법이다.
이제 우리는 테크닉으로 살아갈려 하지말고 진실로써 살아가야 할 것이다. 테크닉은 점차 더욱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고 마침내는 인간의 한계점에 도달하여 스스로 자멸하고 말것이다. 마찬가지로 억압은 억압을 낳고 가중된 억압은 한계가 있어 마침내 폭발하고 말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까지나 아무런 부담도 안겨주지않고 모두에게 기쁨과 신뢰로 받아들여질 수있어 이 사회는 평화와 사랑이 넘쳐날 것이다.
이제 모두 이성을 되찾자. 좀더 너그러움을 갖자. 흑백논리가 아니면 우리에게는 살길이 없단 말인가? 저쪽이 먼저 잘못했으니 우리도 꼭 같은 방법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은 복수다. 복수의 탈리온 법은 구시대의 유물로 버려진지 오래다. 우리가 문화민족이라면 합리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지 원색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들수는 없다.
세상사 모두는 상대가 있는 법이다. 무엇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요. 언제나 내 주장만이 옳고 통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비록 내가 진리의 편에 서있다 해도 때로는 양보해야할 때가 있고 내 의사를 반만 관철시켜도 만족해야 할 때가있다. 이것이 생활의 지혜요 삶의 슬기다. 전부를 취하든지 아니면 전부를 버리겠다는 생각은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잘못된 생각인성 싶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진정코 국가민족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단 각오로 나설 중재자를 필요로한다. 감정이 앞서 있으면 상대방에 귀 기우릴 수 없게 된다. 진정으로 허심탄회하게 이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할 현대의 성현은 없단 말인가? 두 집안을 복수의 죽음에서 구해낸 막내 아들과 같은 용기있고 지혜로운 자가 아쉬운 때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