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우리는 TV나 신문보도에서 국민건강 제일호식품 참기름이 페유에다 깻묵과 고추씨를 혼합시켜서 만들어진 채、진짜 참기름으로 시중에 판을 쳤다는「경북산업사 페유사건」을 들어서 알고있다. 이처럼 가짜가 진짜로 둔갑해서 판을 치고 오히려 가짜가 기세를 떨치기 때문에 오늘날은 아무리 진짜라고 외쳐보아도 믿을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우리 국민은 지금까지 무엇이 옳고 그르며、무엇이 진실이고 허위인가를 식별해서 판단하고 실전할 능력을 기르기보다는 오히려 위 아래 눈치나 보면서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 어떻게 판단할까하는 삶을 배워왔다. 이와 같이 내가 사는게 아니라 남의 눈에 의해서 살아주어야 했기에 이제 주체성 상실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뿐만아니다. 위 아래 살피는 삶이 다른이를 존중하는 예의가 아니라 단지 자기 출세나 이해 관계때문에 선행되었다고 보겠다.
◆권력 등이 가치판단의 기준돼
우리는 숱한 날들을 이와같이 살았기에ㆍ우리의 의식과 구조 역시 관료적이고 가식적으로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관료적 의식구조는 봉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군림하며 약자편에서 진실과 바른 것을 말하기보다는 강자편에 아첨과 아부로써 오히려 약자를 무시하고 경시하는 풍조를 이 사회속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권력과 금력 학력이 우상화되어 만사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권력 금력 학력이 인간 가치판단의 척도와 규범으로서 범인들 역시 권력지향 금력지향 학력지향 추세로 기울 수 밖에 없다는 당연한 귀결에 이르고 말았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구조의 악으로 나타난다.
◆쉽게 살려기에 진실 외면해
이제 어찌할 것인가? 실현과 꾸밈이라는 두개의 단어의 의미가 다르듯이 내적으로 실현하는 삶과 외적으로 꾸미는 삶은 확실히 다르다. 실현은 자기와의 진실한 만남이며 진실한 대결인 반면에 꾸밈은 자기의 결핍과 결점을 감추고 미화하려는 것이다. 물론 진실을 고백하고 살기란 참으로 쉬운일이 아니며 항시 고통과 위협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실 쉽게、안일하게 살려고 하기때문에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게 된다.『한톨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열매를 맺듯이』(요한복음 12장 24절)그 어느누구도 이 우주론적인 인생법칙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익이 적더라도 국민건강식품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도덕적 양심이 살아있어야 하고、타인에게 기쁨이 되기위해서 자신이 고통을 보다 더 감내하겠다는 숭고한 정신이 길러져야하며、그리고 자신의 뜻만이 아니라 타인의 뜻이 무엇인가 헤아릴 줄 아는 갸륵한 마음들이 성숙되어져야 할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가치관들이 피상적으로 되고 그러한 가치관을 추구하다가는 이세상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어려움과 불안때문에 이제는 질적 가치관에서 도피하려는 현상마저 있다.
◆“극기하는것이 예 갖추는것”
동양의 현자인 공자께서도 인이란「극기복례」라고 말한다. 당시의 정치적 허구성속에서 무엇이 인간과 인간 간에 있어 진실인가를 밝히고자 하면서 자기를 다스려 극기하는 것이 바로 남에게「예」를 갖추는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현대인은 만나고 모이는 시간은 많은데 자기와 만나고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자기와의 만남이 없이 다른 이들과의 만남이나 모임은 모두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든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 내면세계를 살피지않고 시대의 감각에만 좇아 산다면 결국 고독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실천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실현되어야한다. 누구나 배우지 않고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기위해서 너를 죽일수밖에 없다는 오늘의 우리 사회현상속에서 신앙인이 먼저 이 죽음의 현상을 농동적으로 수용하고 죽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달리 표현하면 그것은 고통을 피해서 안일하게 살려는 것이 아니고 고통을 인내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젊은이 위한 정책 아쉬워
그리하여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에게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속에서 무기력한 젊은이가 잉태된다고 볼때 모든 것을 안일하게 충족시키는 것만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정신이 무기력하게 되어가고 육신이 무감각하게 되어가는 사회는 미래를 약속할수 없다.
미래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계획한다 할지라도 책임감 있는 사회건설을 위해서는 먼저 도덕의 발전없이는 기대할수 없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창조할 젊은이들은 오늘을 책임있게 살아가야할 것이고、아울러 그렇게 살아가도록 방향을 제시해줄 당국의 정책에도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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