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이 깊어가는 요즈음 뜰앞에 서면 가는 봄의 청아함과 오는 여름의 짙푸름이 함께 다가온다. 가는자 붙잡을 수 없고 오는자 막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누가 봄을 아쉽다 하겠는가 마는 그래도 뜨거운 태양이 가는 봄을 떠밀어내는듯한 오후보다는 가는 봄을 아쉬워 포옹하는듯한 저녁나절이 훨씬 좋아 보이는것은 웬일일까? 나는 이 평화와 고요가 가득한 가운데 며칠전 성모의 밤 덕분에 잘 차려입은 새색시처럼 성모상이 서있고 그 둘레에는 아담하고 잘 정돈된 나무들이 둘어있고 담장을 끼고 파랗게 솟아오른 잔디와 이름모를 풀들이 이우러져있는 이 아름다운 정원을 사랑한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나가거나 이따금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는 경우외에는 좀처럼 동네에 나다나지 않는 나에게 있어서는 유일하고도 자유스러운 휴식 공간이며 사색과 기도의 뜨락이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하루종일 책과 씨름하며 보냈다.며칠 후로 다가온 A본당에서의 청소년 신앙강좌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기회에 청소년 교육에 관한 공부도 나름대로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에서이다.사실 사람이란 것이 어디에(?)들어갈때 마음 다르고 나올때 마음 다르다는 말처럼 한참 바쁘고 급할때는 시간이 생기면 미리미리 책도 봐두고 지식도 넓혀야 겠다고 벼르지만 막상 시간이 생기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것이 예사이다.
그래서 나는 맥없이 무료하고 한가한 시간을 두려워(?)한다. 무언가 뚜렷한 목표와 과제를 세우고 만들어서 그 성취를 위해 최선을 다해보면 거기서 자신의 부족과 무능력을 통감하며 끊임없는 새로운 도전 욕구를 일으켜 기도와 사색을 보다 실감있게 가능하게 한다. 또한 새로운 경험과 세계에 대한 젊음의 열정을 잃지 않을 수 있고 그 성취의 보람을 삶을 풍요케 하는 원동력으로 승화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이유에서 나는 때로는 시간에 쪼들리며、때로는 능력에 부침을 알리면서도 좀처럼 나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일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 맡은 A본당에서의 청소년 신앙강좌도 마찬가지였다.
사제생활 4년여동안 청소년들과 가까이 지내고 그들과의 많은 접촉과 행사를 통해 나름대로 많이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글쎄、그들에게 주입식이나 반강요가 아닌 방법으로 하느님을 전한다는 것이 그리쉽지가 않은 것 같다. 솔직이 말해서 나를 비롯하여 우리 젊은 사제들 조차도 주일 강론대위에서 얼마나 많이 그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는 전혀 상관없이 느껴지는 정식화된 교리설명만을 나열하고 강요함으로써 얼마나 재미없고 부담스러운 하느님상을 심어 주었을까 생각하면 그들앞에 서서 얘기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두렵게 느껴지기 조차 한다.
사실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한、그리고 그들이 속해있는 사회구조가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와 진실과 사랑을 수용할수 있는 장으로 개선되기 위해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한 청소년의 해와 청소년의 달은 다루기 거북한 그들을 사탕발림으로 달래고 얼러서 기성세대와 기성사회 구조에 나주하도록 유도하는、그래서 말썽과 잡음을 없애려는 어른들의 해、어른들의 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5월이 가는 마지막 날 청소년들에게 해줄말과 하루종일 씨름하다보니 잠깐 쉬러 나와서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었나 보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서쪽하늘이 빠알갛게 물들어있다. 불현듯 어디서 들은듯한 시귀절이 머리를 스친다.『내가 만일 한 가슴이 미어짐을 막을수 있다면、내삶은 결코 헛되지않으리…』그래! 만일 내가 한 청소년의 마음에 저 타는 저녁 노을처럼 붉게 신앙의 불을 놓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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