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2월 12일 선거결과를 놓고 우리는 예상외라느니 한국 국민의 정치수준이 높다느니 하면서 얘기했다. 그러나 나는 선거에 임했던 몇몇 성직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의 처신에 관한 뒷얘기를 들으면서 한국교회는 아직도 성숙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들은 사례들은 몇 가지에 불과하며 듣지 못한 사례들이 더욱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 선거가 더욱 자주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어、정당정치에 임하는 교회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져보기로 하였다.
◆정당정치에 임하는 자세
내가 얘기를 들려준 사람들의 마음을 상당히 깊게 상해주었던 사례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어떤 본당신부는 주일날 강론대에서 특정의 ○○당 후보가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던 신자이니 투표해주라고 공개적으로 당부하였다. 다른 본당신부는 본당신자의 직장을 지방에서 서울로 옮겨준다는 확약을 받고서、지역○○당 후보를 초대하여 주일미사 후에 마당에서 신자들과 악수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어떤 본당의 사목협의회는 지역의 ○○당 후보가 작년 여의도행사와 부산 수영비행장행사에 필요했던 시설을 정부비용으로 설치하도록 주선하여 교회의 비용을 줄이는 데에 공헌한 신자라는 인쇄물을 만들어 주보와 함께 나누어 주었고 반상회에도 돌렸다.
다른 본당신부는 주일날 강론대에서 ○○당 후보에게 투표하지 말라는 요지의 강론을 무려 40분 동안이나 하였다. 어떤 선거구에 있던 몇몇 본당신부들은 일치단결해서 선거기간에 ○○당의 신자후보에게 주일미사의 강론대를 내주어 선거유세를 직접 하도록 허락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의 문제는 우선 교회를 특정 정당과 노골적으로 일치시킨 데에 있는 것이다.
교회와 정당의 일치는 성직자나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할 때에 발생하는 것이다. 본당신부가 주일 강론대에서 특정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교회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며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의 공식단체의 이름으로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도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것은 부당하게 교회를 정당정치에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성직자나 평신도 지도자도 정치적 관심을 가져야하고 특정 정당을 자유롭게 지지할 수 있으나 그 지지과정에 교회를 끌어들이지 말고 개인자격으로 해야하는것이다.
◆교회를 타락시키는 행위들
둘째로 이상의 사례들은 교회의 물질적 이득이나 신자의 개인적 이득을 교회의 지지와 교환하려는데에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정당이 어떤 정책과 가치를 추구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돈과 혜택을 주기만 하면 교회의 지지를 넘겨주는 것은 상행위이고 교회를 타락시키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자고로 정치인들은 교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면 재물과 특권을 지불하는데에 주저하지 않았고、서구의 교회는 어리석게도 그런 작전에 말려들었기 때문에 크게 부패했었다. 그런 유혹과 위험은 우리에게도 항상 있는 것이다.
셋째로 정당후보자가 신자이면 무턱대고 좋게 보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신자수가 적어서 그런지 정치후보자가 신자이면 반가워하고 좋게 보는 경향이 있으나 복음정신ㆍ자유ㆍ평등에 위배되는 정책을 추구하는 신자 정치인은 교회에 많은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해야 한다. 명색이 신자 정치인 중에는 독재자와 폭군도 있는 것이다. 후보자가 신자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는 것은 단순히 친척이나 동창이나 동향인이기 때문에 찍어주는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미숙한 투표행위로 보인다.
정당정치에 말려들었기 때문에 많은 손해를 보았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서、가톨릭교회는 교회법에서 교회와 정당의 일치를 가져오는 모든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교회법 285조는 성직자가 정부의 고위정치직을 맡는 것을 금지한다. 교회법 287조에서 정당과 노조의 지도층직이 성직자에게 금지되고 있다. 이러한 교회법 때문에 미국의 드리난 신부와 코르넬 신부는 하원 의원직을 포기해야 했다. 같은 이유로 교황님은 니카라과에서 장관직을 맡고있는 네명의 신부에게 장관직 사퇴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 규정 때문에 한국의 경우에는 입법회의 의원직이나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직도 교회법이 금하는 이 법령이 정치직을 맡지않은 상태에서 인권침해와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성직자의 사회참여를 금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중정당이 있을 때에 성직자가 평당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금지된 것도 아니다.
◆교회법이 허용안내
교회법 317조는 정당의 지도층 평신도가 교회공식조직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금지한다. 교회법은 신자장관이나 국회의원이 평신도협의회의 임원은 물론、교구와 본당의 사목협의회 회원、꾸르실료와 같은 교회공식단체의 간부직을 맡는 것을 불허하는 것이다. 어떤 본당에서는 국회의원이 사목협의회 회장직을 사퇴하지 않아서 문제된 일이 있었고、전국 평신도협의회는 어떤 국회의원을 임원직에 받아들이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교회법의 정신을 따르자면、정치인과 정당의 지도자는 교회공식단체의 지도직을 사양해야 한다.
이 교회법은 교회가 정당정치를 초월해야 한다는 교회의 정신과 입장을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고위정치직、정당의 지도직、교회공식단체의 지도직이 무엇인지 교회법이 상세하게 열거하지는 않지만、지역교회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교회와 정당의 일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교회내의 분열을 가져올 뿐아니라、제한적 가치밖에 없는 어느 정당의 정책을 최선의 것으로 절대화하는 위험을 막기 위한것이다.
본당신부가 강론대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문제와 교회공식단체의 지도적 평신도가 유사한 행동을 하는 문제에 대한 분명한 교회법은 없다해도、이상의 법정신을 따라야 한다는 점은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내 소견에는、본당신부가 강론대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것과 본당의 사목협의회가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인쇄물을 돌린 것은 이 법규정과 그 정신의 위반이라고 보인다.
선거를 맞이해서 교회는 복음정신에 따라서 인간 존엄성의 실현、정의와 자유의 구현을 강조하며、신자들이 그것을 위해서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종용하면서도、그 목적을 위한 특정정당과 후보의 선택은 각자의 판단과 양심에 맡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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