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협회 서울시 지부장 부부가 친아들에 의해서 살해된 사건은 한 마디로 오늘의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치료를 해야 할지 모를 정도의 중병을 앓고 있는 사회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패륜아의 범죄」「무분별한 유학이 빚어낸 범죄」「윤리의 부재」「가정교육의 부재」「황금만능이 빚은 범죄…」 연일 언론매체는 이러한 제목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잘도 진단하고 언론이 마치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정의를 수호하고 사회 윤리를 지켜온 파수꾼인 양 의기양양 나팔을 불고 있다. 그리고 동네방네 어디서나 오늘날까지 우리 모두가 정의롭게, 양심적으로 살아온 의인인 양 자기 나름의 논리에다 진단까지 곁들여 분개하고 있다.
그러면 묻고 싶다. 누가 이러한 패륜아가 되도록 만들었나? 누가 이 끔찍한 범죄가 발생하도록 만들었는가? 이 패륜아의 부모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 패륜아를 지금까지 교육한 선생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 책임을 묻는다면, 이 사건의 책임자는 바로 이 순간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모두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사건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 원인을 진단하기에 앞서 우리 내면의 윤리의식과 가치관이 어떤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면 서구식 논리와 합리적인 사고로 그 원인을 진단하는 데 익숙해 있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국인 특유의 주먹구구식 논리로 너무나 능숙하게 자신을 옹호하고 합리화해버리는 게 우리다. 바로 이러한 이중적 윤리의식, 즉 바리사이적 윤리의식이 빚어낸 결과가 바로 이 사건이 아닐지 의심스럽다.
이 사건을 토론하기 위해 언론매체는 연일 전문가, 교육가,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해서 바리사이적 윤리의식을 내세워 또 남을 진단한다. 그러면 그들은 물질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황금만능에 물들어 있지 않는가? 그들은 세상의 참다운 의인으로 살고 있었는가? 그들의 자녀들은 도피성 유학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입시전쟁의 투사로 내몰지 않았는가를 그들 먼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윤리적으로 무감각해진, 즉 윤리의 부재라는 현실을 살고 있기에 남에게 돌을 던지기 위한 더 이상의 진단은 무용지물일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는 유치원 코흘리개 어린이도 이제는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진단이 아닌 반성과 사회의 개선을 위한 처방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처방을 내리려고 해도 처방이 없는 사회다. 모두가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빠져서 나만의 행복이 나만의 안일과 향락이 최고라고 외치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있어서, 나의 행동 기준이 윤리요 나의 가치관만이 올바른 것이며, 나의 판단 기준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더 큰 일이다. 하지만 사회의 개선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누가 나의 잘못된 의식을 고쳐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이 사회의 개선을 위한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에서 나로부터의 개선을 시작해야 한다.
윤리적 가치관의 확립은 누가 구호를 외치고 누가 포상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 사회의 의식을 지금 이 순간 누가 개선할 수 있다고 보는가? 입시전쟁을 위한 훈련소가 된 교육기관과 교육자가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각목과 폭력이 난무하고 이권 다툼에 혈안이 되어 빛이 빛을 잃어가고 소금이 짠 맛을 잃어가는 종교와 종교인이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정부와 정치가가 할 수 있겠는가.
사회를 치료하고 개선할 주체는 이젠 바로 나 자신이다. 개선의 방법은 자신 스스로가 내면에 참다운 윤리성을 회복하고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즉 인간의 행복은 과학 기술이나 물질의 풍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지배하고 개발하는 윤리성에 있기에, 나 스스로가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나 하나 올바로 산다고 누가 알아주느냐』가 아니라 극에 달한 이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사는 의인이 많아지도록 힘을 합쳐 살아가는 것뿐이다. 또한 이렇게 나 자신이 살아갈 때 나의 가정이 개선될 수 있으며, 나의 사회가 나의 국가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반대하고 끝까지 자신의 이기적 목표만을 추구하려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자. 그 외에는 이 병든 사회를 개선해 나갈 다른 방도가 없으니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형제의 눈에 대들보를 탓하기보다는, 자기 눈에 티끌을 끄집어낼 수 있는 의인이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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