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일 간은 마치 태풍이라도 지나간 느낌이다. 인간의 내면 세계를 강타하는 그런 아픔도 태풍이라 부를 수 있다면 지난 주간은 분명 태풍의 시간들이었다.「무자식이 상팔자」라느니「돈 없으니 죽을 일도 없을 것」이라는 부모와 자식 사이, 아니 가정을 소재로 다루기엔 섬뜩한 우스개 소리들이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난무했다. 사건이 사건이니만치 우스개 소리에 올리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매스컴의 야단법석도 당연했다. 아직 확정적인 판결이 내려진 상황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한국 땅에서 엽기적인 방법으로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경우가 흔치 않아왔기 때문이다. 연일 방송과 신문의 머릿기사를 장식한 이 사건은 사회적 병리현상이 빚어낸 사건이므로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을 공감해야 한다는 진단이 무엇보다도 설득력 있게 비추어졌다.
깨어지고 있는 가정, 가정의 위기 역시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지적되었고 모든 교육이 대학 교육으로 집중되어 있는 잘못된 교육제도 역시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 사회 경제 학계 등 각계에서 망라된 전문가들은 엽기적 사건과 패륜적 행위에 대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금단의 사건으로 못 박고 사회 전반의 각성을 촉구했다. 당연한 진단이고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이미 천인공노할 사건으로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이 사건은 저만치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억장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만큼 한숨을 내쉬게 하던 그 엄청난 충격은 거짓말처럼 새로운 소식 사건 속에 묻혀버리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사건이 그래왔던 것처럼….
물론 악몽은 빨리 잊을수록 좋다. 악몽처럼 여겨졌던 그 사건도 되도록 신속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상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은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그렇게 빨리 잊어버리고 말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모와 자식, 온 가족이 함께 만들어내는 가정이야말로 생명의 원천이고 미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의 원천은 어떤 이유하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분명 한국 땅 전체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충격임에 분명하지만 교회의 윤리 신학자들은 언젠가는 닥칠 수밖에 없었던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는 냉정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오래 전부터 생명, 그 값이 땅 저 밑바닥까지 곤두박질 쳐버린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모든 인간이 참 인간이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라는 해석이다.
이들의 주장은 자기 자신만의 일시적 행복을 위해 서슴없이 태아를 살해하고 있는 낙태천국, 이 땅에서 엽기적 부모 살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당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고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태아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살해, 바로 그곳에서부터 사람 값이 폭락하는 이유를, 아니 이번 사건의 뿌리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참하게 태아를 살해하는 사람들이「낙태 세계 제1위」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는 한 부모와 자식,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가 시작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명의 존엄과 고귀함을 지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신의가 만들어질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풀어나가는 열쇠는 마땅히 생명을 살리는 일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태아를 살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 일은 교회가 앞장서는 것이 옳다. 그 일은 교회의 몫이다.
지금까지 교회가 제시해온 일련의 생명수호운동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죽어가는 생명을 지키는 일에 온 몸으로 나서야만 한다. 무방비 상태의 태아들을 상대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벌이고 있는 무자비한 전쟁을 멈추기 위해 교회는 지금까지의 구태를 과감히 벗어버려야만 한다.
혹자는 자기를 낳아준 친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이번 사건이 도대체 낙태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교회는 바로 이 상관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에서부터 생명을 살리는 일을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태아라는 자식을 무참히 살해하는「낙태왕국」의 풍토 위에 부모라는 생명줄을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버릴 수 있는 사건이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데 앞장 서야만 한다.
잠자고 있는 사회를 깨우고 진흙탕 속에 허우적거리는 사회를 건져내는 일도 모두 교회의 몫이다. 태아의 대량 학살을 막고 그 존엄성을 되찾는 일이 우리 사회의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큰 소리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것은 생명 수호의 기초를 놓는 지름길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 전체가 반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요즘, 교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슴을 치는 일이다. 생명의 존엄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 책임을 먼저 깊이 통감하는 일이다. 그것은 곧「내 큰 탓」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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