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김수환 추기경님의 9주기, 지난 16일이었다.
이번 기일은 설날 연휴로 이어졌기 때문인지, 유독 김 추기경님이 간절하게 그리워지고 생전에 하신 말씀과 일들이 많이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김 추기경님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소통-공감)’에서도 선구자였다.
그분이 얼마나 ‘미디어-소통-공감’을 중시하고 열정을 바쳤는지는 생전의 말씀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1964년 6월부터 2년간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 사장으로 일하던 시절을 회상한 말씀이다.
“… 평생 사제생활 중 가장 투철한 사명감과 기쁨으로 투신한 시기였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정을 다해 일했습니다… 정말 하루 24시간 중 밥 먹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비타민 타블렛 같은 것으로 대신할 수 없을까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뜨거운 열정과 헌신은 바로 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이 땅에 구현하려는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다. 공의회가 교회의 창문을 활짝 열어 시대의 징표들을 식별하고 쇄신을 이루자고 한 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은 사회매체 교령을 통해 그 핵심적 요소로 제시됐다. 교황청에 ‘사회 커뮤니케이션 위원회’가 설립되고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저널리스트클럽’(현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과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잇따라 신설된다.(1967년 6월)
이때 매스컴위원회 총재에 신설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인 김수환 주교가 선임된다. 김 추기경님은 저널리스트 클럽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에 평신도인 클럽 회원들을 대거 참여시켰다. 그 뒤 신부님들과 평신도인 언론인들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공동 명제를 안고 반세기 동안 호흡을 함께 해왔다.
김 추기경님이 교회의 논의구조에 평신도를 대거 참여시킨 것도 평신도의 사도직을 특히 강조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성직중심주의를 강조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영향으로 교회 활동 일체가 성직자에게 맡겨졌으며 평신도들은 성직자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직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무시하고 중세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지향하는 현상들이 보인다.
필자는 지난달 이 칼럼 란에서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그 명칭을 ‘사회홍보위원회’로 바꾼데 대해, 구시대 회귀적 표현으로서 일방적 소통을 뜻하는 ‘홍보’라는 오역에 집착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눈부신 변화라는 시대적 징표를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말 매스컴위원회는 그 명칭이 변경되기 전, 기존 조직이 해체됐다. 평신도는 모두 배제하고 전국 각 교구의 홍보 담당 신부님들로 재구성한다는 설명도 들었다.
가톨릭매스컴상의 경우,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하고 언론인협의회가 지원해온 이 상은 매년 연말에 주로 서울 시내 프레스센터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바쁜 언론인들이 편하게 올 수 있게 하려는 배려 때문이다. 또 식장에는 라운드 테이블에 간단한 뷔페식 음식을 준비해 참석자들이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신부님들의 강경한 주문으로 시상 장소를 멀리 주교회의가 있는 서울 군자동의 천주교중앙협의회 건물로 바꾸었다.
지난해 6월 바꾼 장소의 첫 시상식, 나는 말문이 닫혔다. 강의실 같은 식장에 정면, 한 방향을 향한 긴 탁자의 줄. 제1열은 신부님들과 수상자, 2열은 심사위원, 3열은 또 누구하는 식으로 자리가 지정돼 있었는데 신부님들이 모두 제1열에 앉느라 1열은 미어터지는 듯했다. 사회자는 내빈으로 신부님들만 소개했다. 축사, 격려사도 모두 신부님들의 몫이었다.
시상식 후 1층 로비에는 서서 먹도록 된 뷔페식 점심이 마련돼 있었다. 작은 VIP실이 따로 있었지만 수상자 일행과 신부님들로 인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수십 년간 한국 천주교를 위해 애쓴 원로 언론인이나 현역 가톨릭언론단체장 등 평신도들은 존재의미가 없었다. 머리가 허연 언론인들도 마당 구석 등 여기저기 앉거나 서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매스컴위원회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성직주의의 영광을 탈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김 추기경님으로부터 반세기 동안 맥을 이어왔던 공의회 정신은 퇴색하고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자.
“성직자는 우월하고 백성들과는 다르다고 여기는 게 성직주의에 들어있는 정신이며 이야말로 교회의 악이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무지에 ‘악’이라는 성직주의가 가세한다면 ‘최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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