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어느날 나는 그분의 집을 찾았다.
눈물 방울 만큼의 크기의 꽃도 피워보지 못한 애숭이 난이었다. 그것이 화분에 담겨져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난 쳐놓고는 초라했다. 나는 그분에게 그 난 이름을 물었다. 그분은『난은 난인데…』하고 말할 뿐 그 난의 이름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화려한 양란 같은 화초보다는 화초의 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할 것 같은 무명에 가까운 이런 초라한 난에 마음이 끌렸다. 어쨋든 그날 그분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분은 열흘 동안 집을 비워야 했었다. 무슨 교육인가를 받기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파트의 문을 잠그고 집을 나서면 그분이 돌아올 때까지는 그분의 아파트는 열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독신이었다. 그래서 창가에 놓여진 난에 물을 주면서 한동안 만나지 못할 사연을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은 채 그분이 난에 물을 주는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분은 쉬지 않고 계속 중얼거렸다. 난은 그분의 말을 듣고 그분은 난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얼거린는 말소리만 내 귀에 들릴 뿐 그분이 중얼거리는 말의 뜻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분에게 떠날 시간이 다 됐을 텐데 적당히 해두지 그러느냐고 말했다.
그분은 내 말을 듣자, 난에게 중얼거리던 말을 갑자기 끊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그것은 그분의 눈빛에서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생명인데…내 집에서 나와 함께 지냈으니 가족인데 소홀히 대해서야 되겠소』그분이 내게 한 말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내 자신이 비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렇다. 생명! 비록 하잘 것 없는 풀잎 하나의 생명이라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그분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나는 뭣을 배웠고 뭣을 생각하며 살아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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