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차별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쇠못을 박은 참나무 몽둥이질 속에서
오, 그러나 끝내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깃발 들어 전진하는
남녀노소 광주 시민들의 파도 속에서
피투성이 그 얼굴, 얼굴들 속에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카인의 후예들이, 오 그 학살의
집단들이, 광견처럼 날뛰던 거리
그러나 사람들이 온 몸으로 하나되던 거리
금남로에서 충장로에서 계림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대인동에서
우리들이 마주 앉아 서로
국밥과 눈물을 나눠 먹던 거리에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나는 Soma, 즉「하느님의 몸」을 보았다
만질 수도 없고 파괴시킬 수도 없고
예수의 손바닥처럼 못질할 수 없고
그 어떤 총칼의 죽임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그러나
「사람의 몸과 눈」으로는 뵈이지 않고
또 바라볼 수도 없는 하느님을
나는 차마 보고 말았다
광주의 거리와 집집마다
꽉 차서 불멸의 빛을 내뿜던 하느님을
무등산 그 푸르른 산줄기마다
꽃잎 풀잎마다 가득히 휘감아내리는
하느님을 나는 보고 말았다
악마들 앞에서 어쩌지 못하고 무서워 떨고 있는
그러나 끝끝내 자유와 평화
사람의 이름으로, 남북 전체 민족의
이름으로 파도처럼 넝쿨 지어 밀려가던
1980년 5월의 피투성이 광주!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
빛고을 광주를 꼬옥 껴안아 주던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뭉게구름 젖가슴으로 깊숙히 껴안아 주던
하느님을 나는 보았다
오, 너무도 무섭고 캄캄하여
금남로 가톨릭센터에서 남동성당까지가
어쩌면 천 리 길처럼 멀어 뵈이던
등줄기에 소낙비 맞은 듯 식은땀이 흐르고
두 다리가 후둘후둘 떨린 채 걸었던
1980년 5월의, 총소리 총소리의 광주!
그러나 나는 카인의 피가 쓰러지고
아벨의 피가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오, 그때 나는 보았다
분단된 나라 백두산 위에서
울던 하느님을-우리가 유럽여행을 할 때
베를린 나치 학살 현장까지
함께 따라와서 울던 하느님을
오늘도 나는 보고 있다
Soma, 즉 「하느님의 몸」을 보고 있다
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고
인간의 언어로는 누가 죽인다해도
표현할수 없는 「하느님의 몸」을
나는 「보고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음이여! 광주의 슬픔이여 영광이여!
너무도 아름다워 눈부셔오는
아픔이여! 어떤 못된 귀신들도
두 동강을 낼 수 없는 우리들의「하나됨」이여!
그해 5월 18일은「예수님 승천 대축일」이었다
그해 5월 그날은 꼭「부처님 오신 날」이었나니
오,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금남로에서 충장로에서… 광주의
서울의 부산의 대구의 대전의 군산항의
강원도 백담사 가는 길목 어디에서나
「광주의 피」가 묻어있는,「광주의 살아있는 영원한 피」가 묻은 하느님을
보았다. 앞으로! 오직 앞으로!
걸어가는 하느님을 보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