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때 다니던 성당은 종각이 우뚝솟은 고딕형의 건물이었다. 주일만 되면 약속이나 한듯이 단 일초도 어기지 않고 제시간에 울려주는 이 성당의 종소리는 그야말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이요、땅에서는 그 종소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평화의 울림이었다. 그래서 이 종이 주는 의미는 태초부터 하느님의 사랑안에서 울려나오는 피안의 행복을 이 땅에 전하며、지상의 소원을 이상과 순박한 날개로 백조의 호수를 지나 하늘로 전달하는 진리와 자유와 평화의 전령사라고 기억되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종소리는 현대의 사치(공해)풍조 속에 휘말려 그 아름다운 음률의 종소리를 잘들을 수가 없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아쉬움을 한탄하며 아직도 누군가는 그 옛날의 종소리가 듣고 싶어서 남몰래 눈물짓고 있다고 한다.
근로자、항상 열등의식과 패배의식 좌절감에 허우적거리는 오늘날의 근로자、그들은 지금 이 종소리를 듣고 싶어서 날이면 날마다 먼발치에서 그종을 바라보며 힘차게 울려주기를 바라고 있단다. 지난날의 종소리를 그리워하던 그들은 피골이 상접한 지친몸임에도 불구하고 때늦은 밤하늘의 별들을 벗삼아 종곁으로 모여 위안의 미팅이라도 나눌려면은 지금은 종이 울리는 시간이 아니니 빨리집으로 돌아가라고 종주인(?)은 성당 밖으로 내쫓아버린단다.
인생도 건강도 경제도 생활환경마저도 허락치 않는 아웃사이드에서 방황하는 별들、어쩌다가 그들의 고민을 푸념삼아 터뜨려보자고 종을 찾지만 종소리는 이렇게 울린단다.
나는 지금 반짝 반짝하게 금칠을 하고 외출하기에 바쁘니까 더러운 오물을 튕기지말고 저리가란다. 종이 좋아 종소리를 내다가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급기야는 힘없는 자에게 내리치는 칼자루 쥔 자의 해고소리에 생계의 위협을 받게되었다며 신문고를 울려달라고 울부짖지만 종을 맡은 사람들은 내가 피곤하고 힘이 없어 종을 칠수가없으니 그저 참으라고만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좋아하는 양반님들을 위하여 울리는가? 그래서 교회의 본질을 좀먹는 세속화의 성급함을 위하여 종은 부지런히 울리고 있는가? 세상의 빛과 소금을 다하기 위하여 하늘 높이 떠받쳐 놓은 종이라면 진정 가난한 교회、소외된 자들의 편에서 울려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우리 근로자들은『종이여! 제발 우리를 위하여 좀 울려다오』하며 성프란치스꼬의 평화의 기도를 바치리라.
평화의 주여! 하찮은 나지만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미움이 있는곳에 사랑을 베풀고/다툼이 있는곳에 용서를 청하며/분열이 있는곳에 일치를 이루고/의혹이 있는곳에 믿음을 심으며/오류가 있는곳에 진리를 찾고/절망이 있는곳에 희망을 구하며/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비추고/슬픔이 있는곳에 기쁨을 심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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