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보잘것 없고 배운것 없어 노상에서 호떡을 굽고 있답니다. 장부(丈父)가 놀고있어 생활에 보탬이 될까해서입니다. 이제 겨우 거기에 필요한 10만원을 마련해 보내드립니다…정말 가난한 가톨릭신자의 한 사람으로부터』
지난 6월28일 취재차 해미를 찾은 기자에게 안내 설명을 하던 해미본당 순교자현양협의회 이진교 회장은 순교탑 뒷편의 우물가에 이르자 잠시 숙연해지더니 이와같은 편지내용을 들려준다.
『저는 지난 10월 22일 서울 성모병원에서 순례갔던 일행중 한사람으로 가난한 자원봉사자입니다. 그때에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꼭 하고픈 일이 하나있었지요. 그런데 그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 이제야 필을 들게 되었답니다』라고 시작되는 편지한통이 지난 12월 31일 10만원짜리수표와 함께 이회장에게 전달됐다는것.
스스로가 판 구덩이속에 뛰어들어 신앙을 증거하며 죽어간 무명순교자들의 유해가 수없이 묻힌 해미순교성지가 미신자들의 논으로 변해 방치돼 온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에게 상황을 호소해온 이회장은 발신자의 주소를 밝히지 않은 뜻밖의 편지내용을 읽어내려가다가 그만 울어버렸다고 고백한다.
『우물을 파놓고 전기를 끌어들이지 못해 순례객들에게 물대접도 못한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셨는데、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줄수있는 사람이 되길 원했습니다』
이회장이 보여준 편지는 국민학생처럼 비뚤비뚤 서툴게 쓴 글씨였지만 읽어내려가는 동안 그글씨는 살아 움직이는 아름다운 내용으로 솟아오르면서 취재하러간 기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10만원의 성금은 사람에 따라서는 큰 액수가 아닐수도 있지만 호떡장사를 하면서、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하면서 70일간 모은 성금이었기에 소중했고 감동을 줄수있었다.「정말 가난한 가톨릭신자」는 순교선열의 정신을 가슴깊이 지니고 살고있는、자랑스런 순교자의 후예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순교자들이 생매장된 해미순교성지. 오늘의 우리들을 있게 한 이 자랑스런 신앙유산의 터전이 모래ㆍ자갈 채취장으로 변해 그대로 사라져 버리게만 할 수 있을까.
호떡장사아줌마의 신심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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