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모진 억압을 피하여 만주땅으로 건너가신 아버지와 동생들과 여러 일가 친척들의 소식이 어언 50년만에 편지와 사진과 함께 뜻밖에도 육성으로 된 녹음테이프 1개에 담겨 최근 이곳 자택으로 우송되어 왔다.
처음에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몰라 그냥 펴보았으나 그 속에 담긴 30분짜리 녹음테이프 하나를 보고 그만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서둘러 테이프를 녹음기에 꽂고 온 식구가 둘러 앉아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흘러 나오는 그립고 그립던 내 남동생의 첫육성!『누님! 여기는 만주 장춘입니다. 누님 안녕하십니까? 누님요 내 이야기 들어보이소…』구구절절 옛 이야기와 요사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내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듣고 또 들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고향의 모습, 헤어질때 안타까운 이별의 심정을 애써 감추며 태연한 척하던 식구들의 모습들, 지금의 만주땅에 대한 상상, 그 곳 가족ㆍ친지들의 녹음장면들이 겹쳐 지면서『죽지 않으면 꼭 만나기를「희망」한다』는 피맺힌 바램의 목소리가 지금도 온통 내 온몸을 징징 울리고 있다. 그렇다. 죽지 않으면 만날 수 있다. 아니 몸은 죽더라도 만나보겠다는 마음만이라도 살아있으면 후손끼리라도 만나서 고혼(孤魂)이 된 넋을 달래 주겠지! 아아 언제 일런가…! 갈라진 부모 형제 일가 친척, 친구들이 그리운 옛땅을 밟고 함께 얼싸안고 상봉의 기쁨을 만끽할 그날이! 하느님, 구원의 하느님은 부디 우리의 절규를 들으시어 우리 민족의 상봉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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