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0월, 세계의 매스컴에는 미국 죠지 워싱턴대학 홀 교수 팀의 수정란 복제 실험 소식이 연일 기사화되어 일대 파문을 일으켰었다. 실상 인간 복제의 가능성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예측되고 우려됐던 것이지만, 막상 그 조짐이 구체적인 사건으로 벌어지는 상황이고 보니 윤리적, 사회적 측면의 논쟁이 분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91년에 국제 규모로 발족된「인간 게놈 계획」(Human Ge-nome Project)의 추진으로 미루어, 21세기에 생명과학 기술이 미치게 될 사회적 영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 짐작되는 바 있어, 이들 생물 기술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다각도의 심층 논의가 병행돼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우주의 역사 1백50억 년(또는 2백억 년)을 보통 달력의 1년으로 잡으면, 그 속에서 지구는 9월 14일에 생겨난다. 우주력에서 인류의 눈부신 역사는 첫 해의 섣달 그믐날 마지막 10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 되고 만다. 공룡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출현해 지구를 휩쓸다가 12월 28일에 최초의 꽃이 피어나는 가운데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지구상에 생명이 태어난 지 40억 년이 지나 인간은 DNA 속에 유전 정보를 간직하고 두뇌 속에 영어책 1천만 권에 해당하는 정보를 간직하면서 오늘날의 문명을 일군 셈이 된다.
작년엔가 우리는 그 아득한 옛날에 멸종된 공룡을 스티븐 스필버그 덕분에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었다. 참으로 쥬라기 공원의 공룡을 이 세상에 부활시키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의구심을 갖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얼마 만한 연구로 언제가 될 것인가」의 문제일 뿐 실현 가능한 사건이라는 징조는 이미 나타나 있다. 70년대에 출현한 유전공학 기술이 바로 그 바탕이다.
유전공학의 역사는 매우 짧다. 만약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84)의 현대적 유전법칙이 1866년에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유전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더라면 유전공학의 출현은 수십 년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전문 과학자가 아니라 수도원의 사제였고, 그의 연구는 학계에서 인정 받지 못했었다. 수도원 뜰의 한 구석을 실험장으로 완두콩의 교배 연구에 몰두했던 그의「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논문은 1865년 오스트리아의 브륀 자연과학협회 모임에서 발표되고, 1866년 협회지에 수록되며, 1868년 멘델은 수도원장으로 선출된다.
멘델은 두 가지 형질의 인공 교배로 얻어진 잡종에 나타나는 형질을 우성, 나타나지 않는 형질을 열성이라 부른다. 그러고 열성의 형질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변함없이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한다. 결국 그는 형질의 대물림이 우열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 무렵 생물학계는 어버이의 형질이 후대에 평균적으로 유전된다고 믿던 터였으므로 멘델의 유전법칙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의 연구는 적합한 실험계를 택해 적절한 방법으로 확실한 결과를 얻은 탁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구적 논문은 어느 누구의 주목도 끌지 못한 채 그의 죽음과 함께 1884년 수도원에서 소각되고 만다. 그 뒤 1900년에 멘델의 논문은 유럽의 세 개(네델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연구팀에 의해 재발견되고, 20세기 초 미국의 몰간에 의해 유전학의 기초가 다져진다. 1953년 DNA의 이중 나선 구조가 왓슨과 크린에 의해 밝혀지자 유전자 구조의 수수께끼는 풀렸고, 1973년 스탠포드대학 연구진에 의해 유전자를 실험실에서 임의로 조직하는 실험이 성공한다. 언론은 이를 가리켜 유전공학(Geneticengineering)이라 명명한다.
최근의 유전공학기술의 진전은 첨단 기술의 요술사답게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의 덫에 치인 우리에게 핑크빛 미래를 꿈꾸게도 만든다. 생물체의 본질 자체인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생명체를 개조하거나 새로 만들어내는 길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전자 재조합기술, 세포융합기술, 핵 또는 세포의 치환기술, 조직배양기술 등은 80년대 이후 산업에 실용화되어 엄청난 잠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의 인간 게놈 계획은 생물과학 사상 초유의 거대 프로젝트로써 국제 협력 연구로 2005년까지 사람의 게놈(게놈이란 부모로부터 받은 염색체의 한 벌을 가르키며 사람의 경우 46개) 속의 유전자의 위치를 밝혀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 내의 DNA의 염기 서열을 밝혀낸다는 것 등이 얼개를 이룬다. 말하자면 사람의 사람됨을 특정 분자의 배열 순서의 차원으로 환원시켜 인체의 신비를 낱낱이 벗겨낸다는 것이고 보면, 그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신의 역할을 맡고 나선 것에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에너지부와 NIH가 지원하는데,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윤리문제도 하나의 연구 주제로 포함시키고 있다.
유전공학기술의 전개는 1932년 영국의 헉슬리의「멋진 신세계」에서 그려진 일찌기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예컨대 인간은 난자와 정자의 제공자일 뿐 공장에서 아기가 생산된다던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괴물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과연 있는 것일까. 그런 기상천외의 일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는 것이 생물과학기술의 현주소이고 보면, 그 윤리문제가 단순히 과학자의 손에 맡겨질 수 있는 것이지, 종교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생각이 미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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