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노라니까 전화가 걸려왔다. 십 년 전에 수도원에 입회했던 잘 아는 수도자였다. 만나고 싶다고 해서 시간 약속을 했다.
약속 시간을 35분이나 어기면서 나를 찾아와서 하는 소리가『신부님, 저 수녀원에서 쫓겨났어요』였다.
나는 이런 사건을 한두 번 겪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태연하게『수도생활을 그만두었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고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 그럼 요즈음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지냅니까?』
대답하는 말이『요즈음 전 성당에도 안 나가요. 냉담 좀 해보고 싶어요』
이 말에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수도생활 헛 했구먼. 그러니까 수도원에서 나왔지』
『왜요? 전 잘 살았는데요』
『근본적으로 신앙의 뿌리가 없이 생활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수도생활 십 년 하고 나서 냉담하겠다는 소리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이것 봐요! 수도생활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왜 사는지 근본적인 대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답이 없다면 수도생활 수십 년 해도 그리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도 문제는 계속됩니다. 갈등과 원망, 저주와 실망밖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니고 당분간 좀 쉬기 위해서 냉담한다는 거지요.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그럼 쉬기 위해서 하루 세 끼니 밥도 먹지 말아 봐요. 육신의 삶을 위해서 밥은 찾으면서 영적인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신앙인의 기본 자세가 아닙니다. 그런 자세로 수도생활을 했으니 수도생활이 제대로 되었겠어요? 그저 질질 끌려다니면서 살았겠지요』
『아닙니다 신부님. 지금 냉담은 하고 있어도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행동으로 드러내야지요. 냉담이란 스스로 자신의 영성생활을 포기하는 건데…. 우리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생명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주신 생명을 그분의 뜻대로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이요 그것은 어떻게 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합니다』
『아이구! 신부님 너무 그렇게 원칙적인 이야기만 하지 마십시요. 내 마음은 안 그래요!』
『문제는 신앙의 뿌리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왜 사는지에 대한 해답입니다. 수도원에서 나와 이 세속에 살면서도 이런 뿌리가 없다면 이 세상에서도 불행해집니다. 나는 수도생활을 그만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신앙의 뿌리를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도생활 십 년의 결과가 냉담으로 치닫는다면 신앙의 척도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구 참 신부님! 저를 너무 모르시네요』
『그래 신부님 앞에 와서 냉담하겠다고 한 그 말이 자랑스럽습니까?』했더니 눈물을 핑 쏟으며『알겠습니다. 이 다음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다시 찾아올게요』하면서 느닷없이 문을 탕 닫고 나가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 멍하게 앉아 있으면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끝까지 자기의 변명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한다.
나는 또 하나의 강론 자료를 얻은 셈이다. 겉으로 화려하게 열심히 산다고 하는 사람들… 진정 신앙의 뿌리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성당엘 나오며 무엇 때문에 신앙을 가지고 있을까? 하나의 좋은 예를 나는 오늘 본 것이다.
이런 신앙인의 모습이 한 둘이 아니겠지! 우리 사목자들은 언제나 그들의 신앙을 키워 줄 수 있는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갓 내린 약한 신앙의 뿌리를 일구어 주어야 하겠다.
「수도생활 십 년에 냉담」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비단 오늘의 이 사건 하나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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