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잠깐 하와이에 살 때 겪은 일이다. 생필품이 떨어져 슈퍼마켓으로 물건을 구입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휠체어에 탄 십수 명의 장애인들이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이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We are just person」이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흥미도 발동하고 재미 있는 이야기 거리도 될 듯해서 일단 버스에서 내렸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알아들은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버스의 배차 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우리도 사람이다』『10분 늦으면 1시간 늦어진다』 이들의 주장만으로는 분명하게 이해가 안 가는 일이라 박수를 쳐주고 있던 구경꾼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장애인들을 위해 운행하는 버스가 10분 늦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버스는 무엇이며 또 그 버스가 10분 늦었다고 시위는 또 웬 말인가』. 당시 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정서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었다. 내 좁은 시각으로는 다소 이상해 보이기까지 하면서도 이날 시위는 말할 수 없는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어쨌든 이날 장애인들의 시위는 TV 뉴스 시간에 방영되었다.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들은 바로는 장애인들의 거센 항의로 인해 관계자들이 문책을 당하고 사과 성명까지 발표했다는 것이다. 버스 배차 시간이 10분 지연됐기로서니 문책씩이나 당하고 사과 성명까지 발표하다니,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죽는 소식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살면 살수록 피부 깊숙이 느껴지는 곳이 바로 하와이다. 물론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 버스는 91년도에야 운행이 되었지만 그 전부터 장애인들을 위한 운송 배려는 마련돼 있었다. 장애인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전화만 걸면 특별 장치가 부착된 밴 승용차가 이들이 있는 곳까지 나타나 이들이 원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손이 모자라 장애인들에게 즉각적인 서비스를 하지 못한다는 여론 때문에 특별 장치를 부착한 일반버스 운행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을 생각하는 배려는 여러 가지 제도 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한 번은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척 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앞차에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프리웨이라고 불리는 준 고속도로 같은 곳이었는데 누가 신고했는지 곧바로 순찰차가 나타났고 그는 몇 가지 물어본 후 티켓 한 장을 끊어주었다.
물론 누가 잘했느니 잘못 했느니 하는 시비는 한마디도 필요없었고 경찰의 태도 역시 참으로 공손했다. 대충 이야기가 잘돼 앞차 수리비와 벌금만 물면 되는가 보다 생각했던 나에게 그는 앞으로 20일간 양로원에서 봉사를 해야 한다고 들려주었다.『양로원 봉사라니』놀라서 되묻자 그는 벌금이 많이 나올 경우 그 벌금 만큼 사회복지시설이나 병원에서 봉사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친척 학생은 그날 이후 매 주일날이면 성당과 양로원에서 살아야 했다. 학교를 가야 하는 그는 매주 미사 후 4시간씩 양로원 할아버지들의 식사 목욕 외출 잠자리 등을 돌보아 드렸다. 매주 일요일만 시간을 낼 수 있었으므로 그의 봉사는 거의 몇 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사람이 상하지도 않았고 빗길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에 대한 이 같은 조치에는 예외가 없었다. 이 제도는 어떤 상황 속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 그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는 기본적 사고가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 그가 장애인이든 노인이든 이 제도는 그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자연스런 장치가 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와이에서는 그 어떤 장애인들이라도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이었고 평범한 이웃일 뿐이었다. 장애 자체가 그들을 슬프게 만들지언정 주변 사람들로 인해 겪는 슬픔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따뜻한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올해로 14번째 맞는 장애인 주일이지만 우리의 이웃, 장애인들에겐 아직도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것 같다.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버스를 바라만 보아야 하고 턱이 높아 오르지 못하는 계단 앞에서 눈물 지어야 하는 장애인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는 무수히 많다. 아니 그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웃으로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는 장애인들이 너무나 많다.
무엇이, 누가, 이들의 인간 선언을 막고 있는가. 언제쯤 우리 모두는 장애인들을 태우기 위해 1분 늦게 떠나는 버스를 미소로 기다리고 있을 수 있을까. 과연 이 땅의 4백만 장애인들은 전용버스가 늦는다고 시위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가 있을까. 아직도 그들이 흘려야 할 눈물이 남아 있어야만 하는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