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회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간 것은 1873년이었다. 희망봉 교구장이신 리챠드 주교님이 불란서에서 열린 트라피스트 총회에 가셔서 선교사 파견을 요청한 데서 온 결과다. 총회 참석자들은 관상 수도회의 특성과 선교사의 역할, 사하라 남단의 검은 대륙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세계라는 데 대한 불안감 등으로 선뜻 응답을 못하고 있을 때 보스니아에서 온 54세의 프란치스코 판너 원장이 침묵을 깨고 남아프리카행을 자원, 줄루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 정착, 마리안힐 수도원을 지었다.
오랜 숙고와 기도 속에 프란치스코 대원장은 줄루족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크리스찬을 만들기 이전에 먼저 그들의 인간 존엄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것. 즉 그들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갈망과 기본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대원장님은 엄격한 수도원 고유의 규칙을 완화시켜 줄루족과 수사님들이 나란히 들에서서 일을 하며 기술을 익히고 수확한 것을 거두어가게 했다. 그 외에도 여러 직종의 기술을 따라 배우게 하므로써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이끌 수 있게 했다. 마리안힐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아프리카인들이 동물과 같아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던 백인들 주장의 그릇됨을 증명했고 또 그들의 신조에 도전이 된 것이다. 이런 성공적 사례로 눈에 가시처럼 생각했던 백인들은 프란치스코 대원장을 교회 장상에게 고발했고 결국 그는 직책을 내놓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1백년 전의 일이었다.
지난 4월 26일부터 3백40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들이 국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행사했다. 아직도 글을 못 읽는다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이 믿어온 사람의 상징 위에 X표를 긋고, 그 작은 종이 한 장이 주는 기쁨과 성취감을 만끽하는 모습은 단지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프란치스코 원장님도 그동안 꿈꾸어왔던 것을 이룬 그들에게 희망의 박수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강효선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아동문학가 최헌씨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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