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가 되면서 가치관이 변화하고 인생관이 바뀌다보니 본래의 가치가 전도되어 그 값이 떨어진 것이많다.
◆대학에서부터 전락
경제학적 용어를 빌리면 평가절하된 가치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먼저「대학」의 값이 형편없이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대학의 숫자가 많아지고 대학생의 수가 엄청나다보니 그 희소가치가 있을수가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대학이 진리와 학문의 상아탑이란 옛날의 가치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어쩐지 서글프게 한다. 고고한 자세로 자기의 학설을 설파하는 대학교수의 모습은 엿보기 힘들고 대학총장은 대통령과 동격이기 때문에「프레지던트」라고 불리우고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대학의 권위를 지키는 총장도 찾아 볼 수 없다.
대학이 현대문명국가의 장식품으로 평가 절하된 느낌이며 집권자의 입방에서는 아예 골치 아픈 존재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대학이 이렇게 값이 떨어진 이유는 사회적 체제의 모순에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사회적 상황은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여 물질 돈ㆍ권력ㆍ권위ㆍ명예가 인간 위에 군림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환언하면 인간이 물질과 권력의 노예가 되므로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인간」이 평가절하되어 값이 떨어질대로 떨어져 버린것이다. 사람 목숨 알기를 우습게 알고있다.
◆인간이 객체로 전락
이러니 인간의 존엄성、인간의 기본적 권리、양심의 자유 등이 유린될 수 밖에 없다. 오늘의 사회는 분명히 인간이 체제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평가절하되어、인간이 체제에 의해서 억압되고 고통당하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다.
평가절하된 것을 예시하자면 한이 없다. 그러나 가장 심각하고 격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하느님 말씀」의 평가절하와 왜곡이다.
여기에서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 전부를 해설할 생각은 없다.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신학적으로 풀이할 시간도 지면도 능력도 없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는 바로 그리스도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이상이며 역사관의 종점이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것이「정의」라는 단어이다.「정의」라는 말씀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나 하느님백성이 좋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정의」라는 말을 도처에서 듣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보면、「정의」는 누구에게나 매력을주는 단어임에 틀림없는것 같다.
◆매력을 주는 단어-「정의」
나는「정의」라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그 본래의 뜻을 잘 모르고있다. 그래서 성서나 교회문헌이나 유명한 신학자들의 저서를 읽어보았다. 그중에서도、『부정한 수법으로 제 집을 짓고、사취한 돈으로 제 누각을 짓는 이 몹쓸놈아、너의 아비는 법과 정의를 펴면서도 먹고 마실 것 아쉽지 않게 잘 쓰지 않았느냐』(예레미아 22) 라는 귀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말은 하느님은「부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정의」라는 말을 쓰는 모든 사람이 이 성경의 말씀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가끔 생각하면서 스스로 고소를 금치 못한다. 「정의」라는 말을 쓰는 모든 사람이、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것、물질의 공정한 분배、인간기본권의 보장과 증진、빈부격차의 해소、가난하고 억눌린 자의 해방 등이「정의」의 참뜻이라는 것을 깊이 묵상하고、부정을 거부하고 있는가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다.
◆좋은 말들이 헐값으로
분명히 말하여 오늘날「정의」라는 하느님 말씀도 평가절하되고 있다. 남용되고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사목헌장 7항에 오늘날 모든 용어의 개념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고 쓰여있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말씀까지 자기 유리한대로 사용되어서야 되겠는가. 나는 그리스도인이라 하여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 속하는 모든 좋은 것을 교회나 그리스도인이 독점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외치고 소유하고 실천하기를 바란다.
단지 올바른 개념을 인식하고 그 본질을 따라 실천하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날 많은 좋은 말들이 헐값이 되고 있다. 대학ㆍ인간ㆍ정의 이외에 자유ㆍ평화ㆍ사랑ㆍ일치는 물론、인권ㆍ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이런 좋은 것들이 평가절하되어 헐값이 되는 것도 한심하지만、사람들이 헐값이 된 개념、평가절하된 하느님 말씀을 본질적 가치로 착각하여 영원히 그 본질을 망각할까 두렵다.
『가치관을 왜곡하고 양심을 마비시킨 죄가 하느님에 대한 가장 큰 죄이며 모독이다』라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흰것을 검다고 말하고 검은것을 희다고 하면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 한 사람의 불행일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는 공동체의 불행일 것이다. 나는 모든 좋은 말들이 그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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