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에서는 이 예식을 말씀의 전례가 끝나고 예물봉헌 시초에 행했습니다. 아마 이것은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원수와 화해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인듯합니다.
사랑의 일치를 드러내는 이 예식은 7세기 경부터 이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이로써 교회와 전인류 가족의 평화와 일치를 청하며 같은 빵을 나누어 받기전에 서로의 사랑을 표시합니다』(최윤환 신부 저「미사해설」가톨릭출판사 P46)
이 귀절은 미사중의「평화의 인사」에 대한 해설이다. 그런데 실지로 우리들은 이 같은 해설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아니그 정신만이라도 따르는가? 필자가 이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은 범인(凡人)인 평신도로서는 가톨릭 전례가 내포하고 있는 정신ㆍ본질적 의도, 상징적 의미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함이다. 적잖은 냉담자들의 여론에서는 이 사실은 입증(?)되고 있다.
사제가「서로 평화의 축복을 나누십시오」하면, 우선 괜스레 표정이 굳어지고 망설이고 하지못할 것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어색해하는 중에「진심으로 축복합니다」를 말하곤(심하면 상대방을 쳐다 보지도 않고)그 순간을 넘겨버린다. 『신자들은 미사중에 평소에 비해 너무 표정이 굳어 있다』는 어느 신부님의 발언이 생각난다. 『한국인은 초면부터 심중을 터놓는 데에는 인색하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견해도 생각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루가 24, 36) 하고 인사하시며 서로 평화를 빌어주셨던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사중에라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라는 한 마디로써 서로의 사랑을 표시하는 데에는 왜 어려워해야 할까? 형식에 그치고마는 허전함은 무언가 어색하고 뒷맛이 씁쓸할 뿐이다.
우리 모든 신자들이 한번쯤 생각해보고 넘어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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